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대마불사"의 신화는 거품처럼
사라졌다.

한보 삼미 진로 기아로 이어진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사태로 우리경제는
결국 파산 일보직전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기업이 국가경제력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경제구조 때문에 대기업
의 몰락은 경제 전체에 적잖은 주름살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
이다.

최근 30대 대기업마저 줄줄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경영의 비효율성과
빚더미경영 등 고질적인 병폐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대기업들의 경영효율이 지극히 낙후된 것은 오너 한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경직된 지배구조가 근본원인으로 꼽힌다.

부도파문에 휩쓸리고 있는 상당수 대기업들의 공통점은 오너의 주먹구구식
판단에 따른 사업확장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소유분산이 잘 돼있던 기아자동차의 부도파문은 경영진에 대한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결코 부도로부터 안전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게다가 자기자본의 2~3배를 훨씬 넘는 빚으로 기업을 꾸려갈 정도로 취약한
재무구조와 선단식 경영으로 인해 계열사 한두개만 쓰러져도 그룹전체가
부도에 내몰리기 일쑤다.

이렇다보니 한국기업들이 외국에서 돈을 빌리려면 별도의 재무제표를
제출해야 할 지경이다.

계열사끼리의 내부거래나 자금지원,빚보증으로 지탱하고 있는 선단식
경영체제에서는 개별 계열사만의 재무제표는 의미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제 기업의 생존은 경영의 투명성 제고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도한 차입경영의 지양은 물론이고 결합재무제표 작성이나 사외이사제
도입으로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사안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나라당 국민회의 국민신당의 대선후보들이 제시한 공약도 이같은 시대적
흐름과 대체적으로 궤를 같이하고 있다.

대기업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