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북한노동당비서는 23일 "''주체연호''와 같은 우상화놀음으로는
오늘의 위기를 수습할 수 없다"면서 "북한통치자들은 봉건개인독재체제와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7천만겨레의 염원에 맞게 남북대화와 교류를 실현
하는데로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날 안기부를 통해 발표한 "주체연호가 북한 통치자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북한체제가 겪고 있는 오늘의 위기는 북한
통치자들에게 주는 역사의 마지막 경고"라며 이같이 말했다.

황씨는 특히 "오늘 북한은 봉건주의와 전체주의적 통치수법이 결합되어
사회주주의 탈을 쓴 현대판 봉건주의의 전형"이라고 북한의 개인독재체제를
비판했다.

황씨의 기고문을 요약.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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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자기 수령의 탈상을 계기로 "주체연호"를 쓰기로 결정함으로써
다시금 세상 사람들을 개탄케하고 있다.

스탈린주의와 소련의 붕괴는 북한통치자들에게 준 심각한 역사의 경고였다.

많은 사회주의 나라들이 뜻하지 않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훈을 찾고
개혁개방의 길을 모색하였다.

유독 북한통치자들만은 스탈린주의의 가장 나쁜 면인 수령우상화와 개인
독재를 몇배로 증폭하여 그것을 당과 국가건설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북한체제가 겪고 있는 오늘의 위기는 북한 통치자들에게 주는 역사의
마지막 경고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경고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는 대신에 봉건
주의 냄새가 그대로 풍기는 "주체연호"를 사용하여 김일성 왕조를 유지해
보려 함으로써 시대와 건전한 상식에 도전하고 온 겨레와 세계인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심중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이 아직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주체연호"까지 내놓고
마지막 안간힘을 다 쓰는 것은 파산된 개인독재 체제를 더욱 버림받게 하고
그 종말을 촉진하는 결과밖에 가져올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 북한의 경제는 크게 당의 경제, 군대의 경제, 정무원 경제의 3부분
으로 갈라져 있다.

외화벌이에 유리한 공장.기업소들은 당경제에 집중되어 있고 기술장비
수준이 비교적 높은 군수공장들은 군대경제에 속해 있으며 나머지가 정무원이
관리하는 일반 국민경제로 되고 있다.

당경제, 군대경제는 영도자의 개인소유나 다름없다.

북한의 영도자는 자기가 경제관리와 인민생활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전문가들이 경제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권리마저 빼앗고 있다.

북한에서는 국가를 위하여 군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를 위하여
국가가 필요하며 국가예산의 한 부분을 군대가 군사비로 쓰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쓰고 남은 것이 국가예산이 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만일 북한통치자들이 방대한 군사비와 수령 신격화에 쓰는 낭비의 몇 %만
이라도 절약한다면 주민들의 식량을 해결하는 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출로는 명백하다.

역사의 흐름에 배치되는 "주체연호"와 같은 우상화 놀음으로서는 오늘의
위기를 수습할 수 없다.

북한통치자들은 이미 실패와 파산이 역사적 현실로 된 시대착오적인 봉건
개인독재 체제와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야
하는 것이며 7천만 겨레의 기대와 염원에 맞게 남북대화와 교류를 실현하는
데로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다.

<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