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추석연휴전 석방하는 방안을 검토
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수세에 몰린 대선정국의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카드로 풀이된다.

전.노씨 사면의 필요성은 그동안 여권일각에서 조심스레 제기돼오긴 했으나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1일 공식 거론하고 나선 점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이대표는 이날 "국민대통합정치 구현차원에서 두 전직대통령 사면문제는
조기에 매듭짓는게 좋겠다"며 4일 청와대 주례보고때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노씨 사면및 석방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전직대통령 사면문제는 정치적 득실을 따져 처리할 사안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위에서 김대통령이 처리해야할 "대통령 전권사항"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대표의 언급은 사전 조율없이 나온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는게 대체적 분석이다.

추석연휴전인 내주말께 석방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점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석방시기를 추석연휴전으로 대폭 앞당기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다소 의외며 이는 최근의 복잡한 대선정국 구도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

두 아들 병역문제로 이대표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는 가운데 조순 서울시장
이 대선가도에 뛰어들고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독자출마 움직임을 보이는
등 대선정국이 혼미해지고 있자 이를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의 하나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가에서 나돌고 있는 9월 대란설이라는 시한폭탄의 초침이 추석연휴에
맞춰져 있다는 얘기는 이대표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이대표가 전.노씨의 추석전 석방카드를 내민 것도 추석연휴전까지 지지도를
상승국면으로 돌려놓지 못할 경우 민주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후보
교체론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이대표의 전.노씨 조기사면 건의는 구 여권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으며 무엇보다 두 전직대통령의 기반인 대구.경북(TK)지역을
의식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지도가 2, 3위에 머물고 있는 현재의 위기상황은 여권의 고정표 조차
확실하게 묶어두지 못하고 있는데 원인이 있으며 따라서 일부 반발을 감수
하고서라도 5.6공 세력의 뒷받침을 이끌어내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는 얘기다.

특히 전.노씨가 추석연휴에 고향을 찾을수 있도록 배려할 경우 TK정서를
되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셈이다.

조기 사면추진은 또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최근 행보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총재는 최근들어 종래 "선 사과 후 사면"입장에서 후퇴, "사과를 하지
않아도 용서 차원에서 사면할수 있다"며 TK표 공략에 들어갔다.

김총재의 이같은 전략을 의식, 이를 차단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는
지적이다.

이대표의 전직대통령 조기사면 추진은 그러나 당내 민주계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문민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의 일환으로 특별법까지 만들어 전.노씨를
처벌한 마당에 조기 사면할 경우 자칫 이런 명분마저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대표의 조기사면 건의방침에 김대통령은 아직 이렇다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으나 그 배경과 현재 여권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볼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야권이 전직대통령 사면에 대체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점도
여권이 전.노씨 조기 사면을 단행하는데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