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황장엽 리스트"의 폭풍이 또다시 정치권을 휩쓸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잠잠했던 "황풍"이 다시 위력을 되찾을 조짐을 보이는 것은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가 10일 기자회견에서 "황장엽 리스트"의
존재여부를 공식적으로는 부인하면서도 앞으로의 조사과정에서 새로운
리스트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황씨는 회견에서 "굉장하게 리스트가 있다고 얘기한 것은 없다"면서도
"내가 아는 한도내에다는 서 당국다는 자들에게 다 얘기했다"고 밝혔다.

황씨는 또 "(대남사업을)직접 주관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 주워들은 얘기가 적지 않다"면서 "그런 문제들은 정확하게
증명돼야할 문제들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러저러하게 언급할 성격은
못된다"고 말했다.

황씨의 이같은 말은 망명당시 가지고 온 리스트는 없지만 서울에 와
관계당국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새로운 리스트가
작성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안기부도 황씨에 대한 조사결과를 통해 "황씨가 조사과정에서 이른바
"리스트" 같은 것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동안 북한 고위층으로
있으면서 득문한 북한의 대남 공작관련 사항과 평양 및 해외체류시 접촉했던
국내외 인물들에 대해 진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이에따라 "대공수사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조사,대공관련
혐의가 드러나는 대상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에 의해 처리하겠다"고
수사의지를 피력했다.

안기부가 현단계에서 "리스트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는
없지만 황씨의 진술을 토대로 모종의 인사들에 대해 단서를 잡고
"내사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황씨의 이같은 발언은 일단 남한내 친북지하조직의 존재사실을 북한
최고위층에 있었던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확인해준 것으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황씨의 진술로 볼때 황씨는 안기부의 조사과정에서 남한내 친북
지하조직의 구축 현황과 자신이 접촉하고 들었던 인사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추가 조사과정에 따라
"황장엽 리스트"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야권이 이날 황씨의 기자회견을 놓고 "황장엽 리스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이번 황씨의 기자회견과 안기부의 조사결과 발표는 "황장엽 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면상의 발표와는 달리 리스트의 존재여부에 대한
궁금증과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 자민련 등 야당측의 리스트 공개 및 대선을 앞둔
정치적 악용금지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여 리스트를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건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