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92년 대선자금 공개문제에 걸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최대 시련기를 맞고 있다.

이대표는 지난 23일 청와대 주례보고때 김영삼 대통령과의 교감하에 "대선
자금 공개불가" 방침을 천명한뒤 정국의 흐름이 전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야권은 김대통령과 이대표를 한묶음으로 묶어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고 여권
내에서도 일부 대선예비주자들이 인책을 거론하는 등 사면초가 상황에 몰리고
있다.

더군다나 "더이상의 대선자금 입장 표명은 없을것"이라는 자신의 공언과는
달리 김대통령이 30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직접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히면서
"실없는 사람"이 돼버린 형국이다.

종래 "고백론"이라는 소신에서 후퇴하는 정치적 부담까지 떠안으며 선택한
대선자금 해법이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킴에 따라 이미지 손상은 물론 정치력
부재라는 지적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대통령의 "방패막이"를 자임했던 이대표의 처신에 호의적 반응을 보였던
민주계 일각에서도 상황이 악화되자 "부담을 안겠다는 이대표의 태도는
높이 사야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대표의 정치력이 아마추어임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선자금문제에 대한 김대통령의 별도 언급여부에 대해서는 "김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여지는 남겨뒀어야 했으며 이대표가 앞서가는 바람에 자승자박한
감이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때문에 이대표가 당 안팎에서 조여들고 있는 이같은 압박공세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대세론" 굳히기에 나선 그의 경선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고
여권의 전반적인 경선구도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관련, 중국 방문을 마치고 28일 귀국한 이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대표는 귀국직후 가진 청와대 주례보고에서 김대통령과 대선자금및 자신의
거취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의견조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핵심부의 한 관계자는 "대선자금문제 등에 대한 김대통령과 이대표의
전반적인 시각에는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이대표가 사의를 표명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권의 대체적 시각도 이대표가 이번 대선자금문제 입장표명 파동으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란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대표측에서는 일시적으로 스타일을 구기는 한이 있더라도 대표직을
고수한채 그냥 가야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아직은 경선 선두자리가 흔들리고 대표직을 수행하는데 걸림돌이 될 정도로
"결정타"를 맞지는 않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듯 하다.

이대표 진영은 "대표직을 그만두는 순간 현행 1대 7 경선구도가 각각 8분의
1 구도로 뒤바뀐다"며 "이 경우 특정주자간 합종연횡에 따라 승부를 점칠수
없는 상황이어서 대표직 사퇴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그러나 정반대의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대표가 끝까지 대표직을 고수하지는 않을 것이며 자의든 타의든 사퇴할
경우 타이밍으로 보면 지금이 최적격이라는 지적이다.

사퇴의사는 이날 주례회동에서 먼저 표명한뒤 29일 대선예비주자 청와대
오찬회동과 전국위에서 공식 표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추론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후보등록을 불과 3주일 앞둔 지금 사퇴
하나 후보등록때 사퇴하나 대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신한국당 내에서도 이대표가 이번에 사퇴하지 않더라도 후보등록때 대표직을
사퇴하거나 대표직무정지 조치를 받아들이는 방안을 택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