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적십자대표가 26일 민간차원의 대북식량지원물자 직접전달을 위한
절차 합의문에 공동서명함으로써 민간차원의 대북지원 활성화는 물론 4자
회담 등 남북관계도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분배지역의 확대와 함께 북한의 특정지역이나 주민들에게 지원품을
보낼 수 있는 "지정기탁제"가 합의됨으로써 실향민을 비롯한 민간인 및
단체의 대북지원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4자회담의 틀안에서 논의됐던 식량지원 문제가 남북적십자 테이블로
옮겨짐에 따라 경우에 따라서는 적십자를 매개로한 남북 당국자간 대화도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측이 4자회담에 대해 원칙적인 수락의사를 표명하면서도 대규모 식량
보장을 요구하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해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도 이번 협상
타결은 교착상태에 빠진 4자회담협상에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함께 그동안 사실상 중단됐던 남북직통전화가 재가동되고 4년9개월동안
단절됐던 적십자채널이 다시 뚫린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양측이 진통을 거급한 끝에 합의문에 서명한 것은 이번 접촉의 타결이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측은 우선 한계에 다다른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가 남한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초 추가지원분 10만t을 합의서에 명시해 달라던 북한측이 이를
철회한 것은 계속 지원규모문제만을 핑계삼을 경우 오히려 한참 활성화되는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활동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측으로서도 민간단체 등을 중심으로한 대북지원 움직임을 더이상
외면할 수 없었으며 더욱이 이 기회를 잘 활용할 경우 남북관계개선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 쟁점사항 타결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적이 이번 협상에서 지정기탁제 외에도 포장지에 한적마크 표시 및
지원자 명시, 한적요원의 물품 인도.인수 참여 등을 확보해낸 것은 큰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이같은 협상성과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이 실제로 합의문을 충실히
이행할지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많다.

여기에 협상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서 개최됐다는 점과 판문점을 통과
하는 육상 전달통로를 확보하지 못한 점, 물품 인도인수지역에서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보장받지 못한 점 등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남았다.

< 이건호 기자 >


[[ 합의문 요지 ]]

대한적십자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적십자회는 97년 5월3일부터 26일
사이에 북경에서 2차례의 대표접촉을 갖고 실무절차들을 다음과 같이 합의
했다.


-구호물자의 수량은 1차적으로 옥수수를 기준으로 5만t정도로 하고 97년
7월말까지 인도.인수한다.

-인도.인수지점은 육로의 경우 신의주, 남양, 만포로 하고 해로의 경우
남포항과 흥남항으로 한다.

-자기측 적십자 총재의 위임을 받은 쌍방의 적십자인원들이 인도.인수장소
에서 물자의 수량과 품질을 확인하고 인도증과 인수증을 서명.교환한다.

-북측은 남측 기증자가 지원지역 및 대상자를 지정하여 기탁할 경우 지정된
지역 및 대상자에게 그 물자를 전달한다.

-북측은 남측인원의 북측지역 체류시 전신.전화 등 통신 및 신변안정을
보장하고 가능한 경우 남북사이에 이미 가설돼있는 직통전화를 이용하도록
한다.

-남측의 수송차량에는 적십자표지를 부착하고 남측 선박의 북측지역 항구
입.출항시 양측 국기를 게양하지 않고 적십자 깃발만 단다.

-물자포장에는 적십자 표지와 지원하는 단체명 또는 개인명의를 표기하며
물자에 붙어있는 기존 상표와 사용설명서는 그대로 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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