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23일 한보관련 수사가 마무리된 직후 터져나온 사정당국의 지방자치
단체장 등에 대한 내사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정국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날 송언종 광주시장 유종근 전북지사 등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이 사정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지자 "대선자금 정국 전환용 정치성 표적
수사"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김대중 총재도 지난 22일 저녁 박지원 기조실장을 일산 자택으로 불러
단체장 내사와 관련한 내용을 전해들은데 이어 23일에도 박실장 등과 향후
정국대처 방안을 논의하면서 청와대 내사에 불쾌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는 23일오전 간부간담회를 긴급간부회의로 대체, 사정당국의 내사설
을 집중 논의한 끝에 "김영삼 대통령은 대선자금을 먼저 고백하고 그 뒤에
타인수사에 임해야 하며 탈당 중립내각 구성 등 야당의 정국해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공식입장을 확인했다"고 정동영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회의참석자들은 전당대회를 전후로 김대통령이 김총재에게 화환을
보내는 등 화해제스처를 보인 것은 야당파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꽃다발속의 비수"였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일부 참석자들은 "이제 국민과 함께 김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할 때가
됐다"고 초강경론을 펴기도 했다.

이런 회의분위기 탓인지 정대변인은 "야당과 국민이 요구한 대선자금 고백과
탈당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김대통령이 자리에 앉아 국정을 유린하는 것을
더이상 용납할수 없다"고 발언수위를 높였다.

자민련도 이날 긴급 핵심당직자회의를 열어 정부의 고위공직자 사정을
"정치적 국면전환과 관권선거를 위한 기도" "지방행정까지 혼란에 빠뜨리고
대선을 신.구세력간 대결로 몰아가려는 의도"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난했다.

자민련은 특히 당소속 광역단체장은 물론 충남 보령시장과 같은 기초자치
단체장에까지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대선을 겨냥한 노골적인 야당
파괴공작이라며 여권의 대선자금과 김현철씨 비리 등에 대해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련 일부 당직자들은 국민회의가 "하야투쟁"도 벌일수 있음을 경고하고
나선 것과 관련, "김종필 총재는 하야투쟁은 안된다고 하는데 하야가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면 국민회의와 함께 이를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와 자민련 이정무 총무는 전화접촉을 갖고 27일 양당
합동의총을 열어 공동입장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키로 합의했다.

양당은 당분간 정부.여당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되 사정이 지속될 경우
지난해말 노동관계법 등의 "날치기" 직후 전개한 공조투쟁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관련, 국민회의 정대변인은 "대선자금공개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단계적
으로 투쟁을 강화해 나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행동에 나설수 있다"면서 "합동
의총 시국강연회 등 단계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양당의 이같은 강경태도는 기본적으로 정국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김대통령과 신한국당의 정국 운용능력이 부족함을 부각시켜 야권에 대한
지지세를 확산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김대통령의 대선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양당은 또 사정이슈를 후보단일화문제 등을 놓고 일시 벌어진 양당및 당내
주류-비주류간 관계를 원상 회복하는데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신한국당 이윤성 대변인은 사정당국의 광범위한 내사작업에 "임기말
흐트러지고 있는 공직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작업의 일환"이라며
야권의 반발과 관련, "자기들에게 불리하면 무조건 표적수사냐"면서 정치적
의도가 있을수 없다고 반박했다.

<허귀식.김태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