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 대선때 민자당에서 공식지출한 선거자금 규모가 1천3백억원에
달했다는 당시 민자당 경리실무자의 발언을 계기로 대선자금문제가 정국의
화약고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그동안 설수준에 머물던 "천문학적 대선자금"
의 실체가 민자당 경리실 대리였던 김재덕 신한국당 대전시지부 홍보부장의
진술로 어느 정도 입증됐다며 대여공세를 강화하고 나섰고 신한국당은 이를
야당의 "비열한 공작정치"라고 맞서고 있다.

박관용 사무총장은 30일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와 오길록 종합민원실장의
김씨 접촉사실을 거론하며 "4.11총선전 야당 부총재까지 개입, 5억원을
주겠다고 회유하고 1년이 지난 지금 전화녹취에다 협박까지 했다"며 구태의
연한 정치공작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날 이회창대표 주재로 열린 당직자회의에서도 당직자들은 "추악한 공작
정치의 단면을 보는것 같아 서글프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박총장은 특히 "대선자금과 관련해 도대체 어느 정당이 어느 정당에게 돌을
던질수 있겠느냐"며 법정선거비용 초과지출혐의엔 여야가 따로 있을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씨 증언으로 여권이 더이상 탈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고 판단, 즉각 대선자금 규명과 검찰수사를 요구하는
등 대여 압박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국민회의는 여당의 대선자금 공개후 야당 대선자금의 동반공개 요구가 능성
이나 김대통령의 향후 거취문제 제기가능성 등은 별개사안이라며 선공개
공세를 펴고있다.

국민회의는 특히 "노태우씨가 당시 김영삼 후보진영에 전달한 불법자금
3천억원은 재벌들로부터 거둔 것으로 이미 법원에서 포괄적 뇌물죄로 단죄된
돈의 일부인 만큼 그 유입경로와 전달과정및 사용내역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고 주장했다.

자민련은 "우리당이 자체 파악하고 있는 지난 92년 대선당시 민자당 공조직
의 대선자금은 최소한 4천억원에 이른다"며 "대선자금을 사용한 당사자인
김대통령을 비롯해 대선자금에 관련됐던 사람들이 직접 밝히거나 검찰이
대선자금 의혹의 진상파악을 위한 수사를 벌일것을 촉구한다"고 가세했다.

현재로선 김씨가 자신의 증언을 번복하며 오락가락하고 있어 아직 사태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대선자금 공개를 줄곧 요구해온 야권의 공세는
탄력을 얻게된 반면 여권은 한층 수세에 몰릴수 밖에 없게 됐다.

신한국당은 국회한보청문회와 김영삼 대통령 차남 현철씨에 대한 사법처리로
한보정국을 매듭짓고 경선정국으로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향후 정국운영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신한국당은 표면적으로는 김씨가 대선자금 전모를 알수있는 위치가 아니었고
법적으로도 공소시효가 지나 하자가 없는 사안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사태의 파장을 최소화할 묘안이 없어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보사태의 "몸통"은 바로 92년 대선자금이라는 야권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경우 사태가 걷잡을수 없는 방향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 일각에서는 차제에 대선자금 문제를 완전히 거르고 넘어가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소수의견에 그치고 있는 상태다.

대선자금 공개는 불법선거운동과 금권선거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곧바로 김대통령에 대한 사퇴압력으로 이어질수도 있는 사안이어서 총액과
내역을 공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들중 일부는 "대선자금이 낱낱이 공개될 경우 야당의 두 김총재도
결코 자유스럽지 못할 것"이라며 "이 문제에 잘못 접근할 경우 3김시대
종식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공멸 자초할수 있다"며 사태 조기진화론을 펴고
있다.

이와관련, 당 핵심부에서는 현 정국이 대선자금 국면으로 이어지는 사태는
향후 국정운영과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대선자금에 대한
포괄적인 입장표명 여부 <>야권의 정치공세 차단 <>대선자금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 해소방안 등 다각적인 대책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김대통령의 "발목"을 묶고 대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선자금 문제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야권의 이같은 대여공세가 "판을 깨는 단계"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김대통령의 협조여부가 자신의 마지막
대권도전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 역시 내각제
개헌에 대한 김대통령의 협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김대통령을 최대한 압박해 유리한 정국상황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 두 김총재의 의중이며 이런 맥락에서 볼때 대선자금문제는
앞으로의 정국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