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청문회"가 7일 서울구치소에서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 신문을 필두로
시작됐다.

수감중인 정총회장을 불러 진행된 이날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정태수 리스트"와 한보의 지난 92년 대선자금 지원설,
각종 특혜대출및 정.관계 커넥션 등 한보비리의 "몸통" 규명에 주력했다.

<>.청문회는 당초 오전 9시정각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한국당측이 국민회의
김원길 의원의 자격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20여분 늦게 시작.

신한국당 의원들은 김의원이 95년과 96년 두 차례에 걸쳐 한보측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위원자격이 없다고 주장.

박헌기 신한국당 간사는 "의원이 국정조사의 대상이 된 사건에 연루돼
공정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위원으로서의 자격을 가질수 없다"는 국정조사및
감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제시하며 김의원의 위원자격에 문제를 제기.

이어 신한국당소속 특위위원들은 1층 휴게실에 모여 이 문제를 놓고 대책을
숙의한뒤 일단 청문회를 시작해놓고 보기로 결정.

김의원은 이에 대해 "한보 이용남 사장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모두 후원회를 통해 받은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액수
역시 5백만원을 밑도는 적은 액수"라고 해명.

김의원은 특히 "한보 이사장은 4.19 당시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인사들의
모임인 4월회 부회장이며 나도 4월회 멤버인 연유로 이사장이 후원회에 참석
하게 된 것"이라며 한보와 무관한 개인적 차원의 자금지원임을 주장.

<>.이날 오후 정총회장에 대한 증인신문도 여야의원들의 특위활동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위원 제척문제"와 의사진행및 신상발언으로 당초 예정시간보다
50여분이나 늦게 재개.

문제의 발단은 박간사가 오후회의에 들어가자마자 특정야당의원의 제척문제
를 또다시 거론하기 시작한데서 비롯.

국민회의 김민석 의원은 "신한국당 이신범 김문수 의원이 김현철씨로부터
공천을 받았고 경복고 출신으로 "현철이가 똑똑한 인물"이라고 비호한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는걸 굳이 얘기해야겠느냐"며 "다 알고 있는" 김원길 의원건을
계속 거론하고 있는데 발끈.

이에 이의원은 "현철씨와 아는 사이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가 공천을 해줬다
고 주장하는 것은 인격을 대단히 손상시키는 것"이라며 "발언을 취소하지
않으면 위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격앙.

여야 의원들의 실랑이가 계속되자 현경대 위원장이 나서 "서로 말꼬리만
잡으면 청문회가 원만하게 진행될수 없다"고 제동을 걸어 사태는 일단락.

<>.정총회장은 이날 수인번호 "보 2952"를 단 옅은 하늘색 수의와 흰 운동화
를 착용하고 오전 9시20분 서정우 변호사와 20여명의 교도관에 둘러싸여
청문회장에 도착.

그는 현위원장이 곧바로 인정신문을 시작해 생년월일을 묻자 "1923년
8월13일생"이라고 또박또박 대답.

정총회장은 의원들의 질문이 시작되자 "재판에 계류중이기 때문에 말을
못하겠다" "모른다" "잘 기억이 안난다" "그런 사실이 없다"는 등 부인과
묵비권 행사로 일관, 청문회 전도가 순탄치 않음을 예고.

그는 의원들의 질의가 한보와 관련된 각종 비리에 집중되자 "한보가 음지
쪽만 비쳐지고 있는데 그렇지만도 않다"고 설교조로 논리를 전개.

그는 또 "한보가 노인회관 건립 하키 양성 영동전문대 설립 등의 일도 했다"
며 긍정적인 면을 강조.

정총회장의 무성의한 답변이 이어지자 민주당 이규정 의원은 "정총회장이
의원들에게 호통치는 모습을 보니까 10년정도는 더 감옥데 계셔도 되겠다"며
"변호인단도 정총회장의 병보석을 신청할 필요가 없을 것같다"고 힐난.

정총회장은 이의원이 "지난 대선때 여당후보에게 돈을 한푼도 주지 않았다면
괘씸죄에 걸렸거나 사업자금을 한푼도 못 얻었을텐데"라고 묻자 "그래서
형무소에 두번씩이나 온 것같다"고 말해 장내에 폭소.

<>.한보특위의 구치소 청문회가 진행된 경기도 안양 소재 서울구치소에는
청문회가 시작되기 1시간전인 오전 8시부터 내외신기자 2백여명이 몰려들어
청문회에 쏠린 나라안팎의 높은 관심을 여실히 입증.

구치소 사무실 청사 3층에 마련된 2백여평의 청문회장에는 KBS MBC SBS YTN
등 국내방송 4개사의 고정카메라 12대가 곳곳에 배치돼 청문회 진행상황을
전국에 생중계.

또 이동식 ENG카메라 10여대가 수시로 장소를 옮겨 송곳질의에 임하는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답변에 응하는 정총회장의 표정과 손동작 등
몸놀림을 일일이 포착.

이와함께 국립영화제작소측에서도 청문회 전과정을 남기기 위해 주요 장면을
촬영.

위원장석 맞은편에 위치한 정총회장의 증언석 뒤로는 내외신 취재기자들을
위한 기자석 50여개가 마련됐으며 기자석 뒷편으로는 교도관 30여명이 배치돼
청문회 도중 발생할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