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지난 24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노동관계법 공동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 28일까지 단일안마련을 위한 마라톤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시한만 연장한채 최종타결에 실패했다.

이같은 결과는 노사정이 첨예하게 맞선 쟁점들을 모두 타결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촉박한데다 지난해 변칙처리된 노동관계법에 대한 여야의
정치적 입장도 판이해 어느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여권은 "한보소용돌이"에 휘말려 "책임질만한 사람들이 모두
사의를 표명한 상태"(신한국당 김문수의원)에서 어느 누구도 소신있게 이번
협상에 임하지 않았다.

이수성 국무총리가 "임시국회 대정부질문답변만 마치면 나는 그만 둘
사람"이라고 공언했고 청와대 정부부처 신한국당의 고위인사들도 한결같이
"난 그만 둘 사람이니 노동법개정에는 관여치 않겠다" "내가 무슨 전권이
있느냐"는 식으로 발뺌하기 바빴다.

더욱이 진념 노동부장관 이상득 정책위의장 환경노동위원으로 이어지는
당정라인은 서로 불협화음을 냈고 환경노동위원들조차 소신과 당론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었다.

또 전경련 경총 등 재계가 압박하며 발목을 잡은 것도 여당의 협상태도를
경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관련, 여당이 협상시일이 촉박함에도 지난 24일 제시된 야당공동안에
대한 입장을 27일에야 내놓은 것은 여권내부사정을 단적으로 드러낸 예로
지적된다.

이 대목에서 야당은 여당이 변칙처리된 노동관계법의 시행일을 넘겨 여야
단일안을 마련함으로써 변칙처리의 사후정당화를 기도하려 했다는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야당측도 이번 협상에서 너무 융통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자민련은 이번 노동관계법 검토위에 참여한 정우택 의원에게 협상전권을
부여했으나 국민회의는 전권을 보유한 이해찬 정책위의장이 외곽에서
지휘하는 협상틀을 고집, 신축성있는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환경노동위가 협상타결을 처음부터 기피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환경노동위소속의원들은 실제로 "여야지도부가 노사양측으로부터 쏟아질
비난을 우리보고 다 뒤집어쓰라는 얘기" "권한도 없는데 타결이
이뤄지겠느냐" "우리는 겁이 나서 타결 못시킨다"라며 곤혹스런 입장을
되풀이해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야는 이날까지 계속된 협상에서 <>복수노조 즉각허용(단위사업장 5년
유예) <>연월차 휴가상한선 폐지 <>노동조합의 결격사유로 사회운동 폐지
<>조정절차 및 냉각기간(일반 10일 공익 15일) <>노조임원 겸직금지삭제
등에 완전 합의했다.

또 여야는 요건과 절차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지만 정리해고제를
유예기간(2년)을 둬 도입하기로 했다.

노조전임자임금도 기업단위 복수노조허용시기에 맞춰 2002년부터 지급하지
않기로 했고 변형근로제는 1일 상한선(12시간)을 설정, 1개월단위 56시간
범위에서 허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야는 이밖에 직권중재대상 공익사업으로 철도를 포함시키고 방송 버스는
제외키로 잠정합의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여야는 오는 8일까지 연장한 협상을 기존 환경
노동위 중심에서 탈피, 정책위의장과 총무선의 접촉을 통해 정치적으로
일괄타결하는 방안을 추구할 전망이다.

이날 청와대 비서실개편을 계기로 새로 구축된 여권내 협상지휘부의
역할도 주목된다.

< 허귀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