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씨가 누구에 의해 무슨 이유로 피습을 당했는지 확실히 규명된
것은 없으나 황장엽비서의 망명신청으로 위기에 몰린 북한이 보복성 테러를
가한 것으로 공안당국은 확신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지방경찰청도 16일오전 수사방향을 대공수사쪽으로
공식 전환한 상태다.

공안당국이 이씨 피격사건을 남파 공작원이든 고정간첩이든 북한측이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근거는 대략 세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총격을 당한 이씨가 의식을 잃기 직전 손가락 두개를 펴보이며
"간첩, 간첩"이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피격 당시 다투는 소리가 난 사실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어떤 의견
교환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이씨가 가해자의 신분 또는
저격이유를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벨기에제 브라우닝권총의 탄피다.

브라우닝권총은 지난해 북한 잠수함 침투당시 간첩들이 소지하고 있던
것과 같은 종류로 총기길이가 짧아 휴대가 간편해 북한 요원들이 소지한
경우가 많았고 소음기까지 장착한 점을 볼 때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마지막으로 황비서의 망명요청이후 북한이 이를 남한측의 납치라고 주장
하며 밝힌 보복위협을 들 수 있다.

이씨 주변에서도 황의 망명 요청이후 자신에 대한 북한의 테러가능성을
우려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증언하고 있다.

지난해 김일성일가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수기를 펴내기도 했고 그간의
북한체제비난 발언으로 보복테러의 표적 제1호가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씨를 저격한 범인들이 남파된 북한 공작원인가 아니면 국내에서
암약중인 고정간첩인가.

당국은 일단 고정간첩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강화된 요인과 주요시설물에 대한 경계, 강도를 더하고 있는 출입국
관리 등에 비추어 긴급 남파된 요원보다는 고정간첩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더욱이 이씨는 성형수술까지 받아가며 철저히 신분을 숨겨왔는데도 피격
됐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황비서의 망명요청이후 국내요인의 납치및 암살등 북한의 보복성 테러를
경계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엄청난 구멍이 뚫리게 된 당국으로서는 제2, 제3의
테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울수 밖에 없게 됐다.

현재 국내에서 암약중인 북한의 고정간첩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공안당국은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의 정세, 동향파악이나 첩보수집
단계에서 한단계 올라가 우리 국민에 대한 위해행위에 직접적으로 나선다고
할 때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북한측이 김정일의 55번째 생일을 몇시간 앞두고 테러를 감행했다고 볼때
황비서 망명요청이후 그들이 어떤 태도로 이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한 상징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남한에 고정간첩이 5만명 가까이 된다"는 황비서의 발언으로
국민들이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공안당국은 이에대한
근본적인 해결에 서둘러 나서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김희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