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7일 한보사태와 관련 임시국회 소집은 물론 국정조사권을 발동키로
합의한 데에는 무엇보다 더이상 사태를 방치할 경우 차기대선을 앞두고 현
정권의 도덕성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여권의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여권이 당초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검찰에 "성역없는 철저수사"
를 촉구하면서 이례적으로 야권의 국정조사권 발동 요구까지 전격 수용한
것은 설사 "제살깎기"를 감수해서라도 야당의 공세에 맞대응해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여권은 야당이 이번 사태와 관련, 여권핵심인사의 배후설에 이어 김영삼
대통령 책임론까지 거론하고 나선데 대해 "더이상 좌시할수 없다"는 불쾌감과
함께 "여야없이 처벌할 사람은 처벌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보사태를 더이상 방치할 경우 노동법 파문과 맞물려 김대통령의
통치권 누수현상이 가속화될지도 모른다는 상황인식과 함께 야당의 무분별한
의혹설 제기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자칫 당내 일부 대권주자들이 "도중하차"
할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같은 기류는 김철 대변인이 이날 이홍구 대표가 주재한 고위당직자회의를
마친후 "우리당은 성역이나 여야없이 누구든지 철저하게 조사를 해야하며
당의 사활을 걸고 바로 "이것이 선거"라는 기분과 각오로써 철저히 대응키로
했다"고 언급한데서도 나타난다.

정치권 일각에서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여야 중진의원들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며 김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 대해서도 역공이 취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여권은 한보사태가 "뜻한대로" 진상이 규명돼 마무리지어지더라도
한보문제는 원천적으로 현 정권의 "실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또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여권내 핵심인사가 연루돼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수도 없기 때문에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운신의 폭"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리란 부담도 따른다.

이와관련, 한 핵심당직자는 당내에 구성키로 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운영에
대해 "근거없이 제기되는 야당의 각종 의혹을 반박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야권은 한보사태로 정국의 주도권은 물론 차기대선에서도 일단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 대여공세를 강화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김대중 김종필 총재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에 전면 복귀키로 결정한
것도 이같은 상황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야권내에서는 "파업정국" 속에서 여권이 거부하던 여야영수회담을
성사시킨데다 영수회담을 통해 복수노조허용을 언질받는 등 명분과 실리를
모두 이끌어냄으로써 일단 여권을 코너로 몰아붙이는데 성공했다는 자신감이
팽배해 있다.

더욱이 한보사태는 노동법과 안기부법 원천무효화를 주장하면서도 따가운
여론을 의식, 국회복귀 명분을 찾느라 고심했던 야권의 처지에서 볼때 숨통을
열어준 측면도 있다.

이같은 상황으로 미뤄볼때 야권은 임시국회에서 한보사태와 관련한 특혜
의혹과 권력의 비호를 집중 추궁하면서 노동법과 안기부법 문제에 대해서도
여당과의 단일안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고 원천무효화를 요구하는 강공을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야권내에서는 여권의 "성역없는 수사" 방침과 "김대중 총재에 대한
책임론" 거론에 대해 "물타기전술"이라는 표면적인 대응과는 달리 내심 긴장
하는 분위기도 일고 있다.

국민회의 한 당직자는 "한보의 배후에 여권실세가 있다는 제보는 오래전에
접수됐다"고 자신감을 표명하면서도 "여권은 방대한 정보력과 수사력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말해 예측불허의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자민련도 한보측의 마당발식 로비를 의식, 자체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문희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