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에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한다해서 "경제총리" "경제팀사령탑" 또는 "경제총수"
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경제부총리의 파워가 세다는 비유다.

반면 정채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때는 으레 개각의 희생양으로 도마위에
오른다.

"동네북" "얼굴마담"으로 통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경제부총리인 경제기획원장관은 홍재형부총리가 마지막으로 28대다.

부총리를 두번 세번한 사람도 있어 실제로는 25명이 부총리를 지냈다.

1대부터 7대까지는 기획원의 이름대로 원장으로 불렸으나 8대인 장기영
부총리부터 부총리겸 장관으로 불렸다.

재정경제원장이면서 부총리로 유임된 홍부총리를 빼면 역대부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2개월에 불과하다.

서강대교수출신인 남덕우부총리가 4년3개월로 최장수기록을 세운 반면
김현철부총리가 내각수반으로 영전되는 바람에 22일의 최단명으로 끝난
기록도 있다.

경제부총리는 직위상 재무장관과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보다 위지만 대통령
의 신임도에 따라 서로간의 비중은 달라진다.

대통령의 신임이 청와대경세수석쪽으로 기울어져 빛을 내지 못한 부총리도
적지 않았다.

60년대말 김학렬경제수석비서관은 박정희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경제정책을 좌우해 당시 부총리(박충훈)의 역할을 무색케했다.

그때 그때의 정치 경제적 여건이나 부총리개인의 역량도 그의 행동반경및
영향력을 좌우한다.

부총리에게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실제경제팀장으로 군림한
인물도 많다.

경제수석에서 부총리가 된 김학렬씨를 비롯해 장기영 신현확 김만제
최각규씨등이 비교적 소신껏 경제팀을 이끌었다는 평을 들었다.

태완선 이한빈 김준성 정인용부총리는 주변여건으로 별다른 소리를 내지
못했다는게 후세의 평가다.

이들의 궤적이 곧바로 개발연대를 시작해 세계 13대교역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경제발전을 상징하기도 한다.

초대재정경제원장으로 임명된 홍재형부총리는 재경원의 기능면에서 역대
어느부총리보다 강력한 힘을 갖게 됐다.

옛 기획원장관으로서의 명예(HONOUR)와 재무장관으로서의 영향력(POWER)를
동시에 누릴수 있게 돼 일각에선 벌써부터 "경제대통령"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그는 재무장관에서 지난 10월4일 기획원장관으로 영전한 다음
불과 두달여만에 유임되면서 "수퍼경제부처"의 장이 됐기에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고광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