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이 새해예산안의 법정시한내 처리를 위해 2일오후 국회본회의를
강행하려하자 그동안 장외에서 "12.12투쟁"을 벌여온 민주당이 이날
전격적으로 원내로 들어와 예산안의 단독처리를 실력으로 저지하고
나서 장기경색정국에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민주당이 원내외 병행투쟁으로 전략을 바꾼 이상 한두번 몸싸움을
벌이다가 민자당이 모양새를 의식,상임위와 예결위에서 확정한 추곡수매
동의안이나 예산안을 일부 조정해줌으로써 여야동반관계의 복원을 꾀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권이 장기간 장외에 머물러온 민주당을 "길들이기" 차원에서
정공법을 펴온 이상 계속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지 민주당을 위한
생색내기에는 상당히 인색할 것이라는게 현재로서는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러한 관측이 맞아떨어질 경우 그동안의 여야대결이 명분싸움에
비중이 두어졌던데 반해 이제부터는 원내에서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극한 대치상황으로 비화할 공산이 커졌다.

민자당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정국경색이 장기화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여권수뇌부가 "정통성을 지닌 문민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의연하게
임하는 것이 정도"라는 기본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당직자들도 과거처럼 야당을 굳이 달랠 필요가 있겠느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 파트너로서 야당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여권수뇌부가 이같이 민주당 특히 이기택대표를 "거의 인정해 주지
않는 상황"에까지 온 것은 이대표에 대한 신뢰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권에서는 여권이 받아들이기 거의 불가능한 12.12관련자 기소관철
을 고리로 이대표가 정기국회를 몇주간이나 공전시킨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않는다는 반응이다.

만약 그같은 전략이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았다면 이대표의 정치감각에
문제가 있거나 참모가 "코치"를 잘못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민자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운영,예산안과 민생법안을 심의하고있는
기간에도 12.12의 공소시효 만료이전에는 등원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다
느닷없이 원내복귀를 결정한 의사결정행태에 공감할 수 없다는 분위기
가 주조다.

이같은 정치권의 분위기를 감안할때 여권은 야당의 행보에 전혀 무관심
할 수야 없겠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일단 정기국회를 마무리한다는
전략으로 현정국에 임할것 같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뒤이어 연말의 대폭적인 당정개편으로 정국흐름의 중심축 역할을 강화
하지 않겠느냐고 보고있다.

여권의 수순이 이렇게 흘러갈 것으로 보는 것은 또 어차피 내년초
부터는 자연스럽게 각당이 지방자치선거체제를 갖추는등 지자제 정국
으로 접어들것이고 정치권이나 국민의 관심이 단체장선거로 쏠릴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그동안의 장외투쟁과 앞으로의 대여투쟁에서 별
소득없이 "참패"할 경우 여권의 정국운영에 상당한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럴 경우 오히려 민주당내에서 이대표의 지도노선을 둘러싼
당내갈등이 당권싸움으로 연결되는 등 당내문제가 복잡해져 민자당은
이를 관망하는 "느긋한" 입장이 될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 박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