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지난25일 이기택민주당대표가 전격적인 의원직 사퇴 선언을 발표한후
당내에서는 이대표의 정치행로를 이같이 표현했다.

민주당내 이대표계와 동교동계간의 정치적 동거상태가 끝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에는 또한 양측의 대립으로 초래될지도 모를 민주당의 분열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베여있다.

당내에서는 "이대표의 의원직 사퇴가 DJ(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대표가 주도하던 12.12군사반란자 기소촉구 투쟁에 DJ가
"원내병행투쟁론"을 주장하며 제동을 걸자 양측이 마찰을 빚었고,이대표는
이를 타개키위해 정공법으로 나왔다는게 사퇴발언의 직접적인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퇴발표가 "민주당내 세력분포를 다시 짜자는 포석"
이라는 말도 나오고있다.

명실상부한 민주당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자는 구상의 시발이라는
주장이다.

"한방 얻어 맞은"동교동계는 표면적으로 "이대표를 설득해 당의 모습을
원상 회복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고있다.

이대표 이외는 당권을 맡길만한 적당한 인물이 없다는 "대안부재론"의
표현이다.

동교동계의 얼굴인 권노갑최고위원이 이대표중심의 단합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동교동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KT(이대표)의 효용가치를 다시
계산해야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만만치 않게 일고있음을 알수있다.

이와관련 동교동계의 한 관계자는 "KT의 가치는 민주당이 호남당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있었다"며 "그러나 이제 KT가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 동교동과 결별하겠다는데야 다른 방도를 찾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당권은 전당대회에서 창출된다.

이대표가 계속해서 "홀로서기"로 나갈 경우 동교동계는 차기 전당대회
에서 다른 인물을 내세워야한다.

이같은 상황이라면 동교동은 당초의 입장을 바꾸어 조기전당대회를
개최할수 밖에 없다.

이는 이대표가 내심 바라는 바이기도하다.

이대표의 측근들은 지금의 투쟁노선을 지켜나가면 차기 전당대회에서
이대표가 다시 당권을 쥘수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눈치이다.

지금의 장외투쟁노선을 차기 전당대회까지 몰고가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당내 최대 계보인 동교동계의 시각은 다르다.

아직은 어느 누구도 동교동,호남세의 지원 없이는 대표로 선출될수
없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이대표가 끝내 동교동과 멀어질 경우 동교동측은 당내.
외에서 차기 당권자를 내세울 것"이라고 말한다.

우선 당내인사중 대표직을 맡길수 있는 사람은 최근 동교동계로 접근한
김원기최고위원과 정대철고문을 꼽을수 있다.

당내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김원기-정대철 공동대표"의 가능성을
점치기도한다.

김최고위원은 최근 사석에서 "동교동측이 이대표를 지지하는 것은 자신이
심어논 나무를 관리하는 차원일뿐 차기 당대회에서도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닐것"이라고 말해 동교동계와 모종의 교감이 있었던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했다.

당대표직을 놓고 이대표와 동교동측이 경합에 나서는 것은 곧 주류측의
양분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좋아하는 쪽은 비주류측"이라는 것을 동교동측은 너무나
잘알고있다.

당권도전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저인망식 표엮기 작업을 해왔던 김상현
고문이 최대 수혜자라는 견해이다.

이는 동교동측에 치명적 일수도있다.

동교동 일부에서 "김-정공동대표"는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그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외부인사 영입론이 등장했다.

내외연에 가입한 한 의원은 "당외 인사로는 국민적 신망을 얻고있으면서도
차기 대권도전에 무리가 없는 인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만약 당외인사를 영입하게 된다면 그 대상자가 누구일지는
DJ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DJ자신이 될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말도 않되는 일"이라고만
답했다.

지금 벌어지고있는 당분열 양상및 당권경쟁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내년2월 열릴 것으로 보이는 전당대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고
28일 열릴 의원총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도 알수없다.

이대표의 투쟁노선에 대한 여권의 반응에 따라 그의 투쟁강도는
변화여지가 크다.

동교동측은 지역당 탈피라는 측면에서 이대표를 대신할 인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이대표에게 당분간 당체제를 맡길 가능성도 작지
않다.

다만 민주당은 이미 당권경쟁에 들어섰으며 이대표와 동교동측과의
경쟁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은 부인키 어렵다.

26일 대전집회에 참여한 당 관계자는 "당지도부가 오늘 겉으로는
한목소리로 "12.12반란자 기소촉구"를 외쳤지만 속으로는 서로
"딴생각"을 했을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 한우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