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 너무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주변 사람이 나에겐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 단 한 명에게라도 그렇게 얘기한 적은 언제일까. 어린 시절엔 부모나 친구에게 곧잘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로 나올수록 그런 기억이 점점 사라져간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고 하더라도 내가 힘들다고 그들에게 말하는 것이 혹여나 사랑하는 사람까지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스타트업 창업자도 보통 사람들처럼, 아니 어쩌면 더욱더 힘들다고 말할 용기를 내기 어렵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성공시켜야만 한다는 압박, 늘어가는 직원과 투자자에 대한 책임감,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 언제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 등이 쌓여 가지만, 선뜻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기 어렵다. 오히려 창업가라면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본인이 힘든지도 모르고, 또 힘들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젊은 창업가들이 평균 성인들보다 우울, 불안, 수면장애, 자살 위험성 등이 많게는 두 배까지 높게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에서도 창업가 중 72%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그중 81%는 스트레스를 숨기고 있다고 한다.

스타트업은 창업가라는 인적 자본을 바탕으로 혁신을 만들면서 크게 성장해가기 때문에, 창업가들의 정신건강이 매우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투자자인 벤처캐피털(VC)들이 투자금액의 1%를 정신건강에 쓰도록 서약하거나, 다양한 ‘멘털 케어’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한 리더십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점차 이런 프로그램들이 확산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신건강을 관리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는 창업가는 적은 수에 그치고 있다.

지난주 문을 연 ‘창업가들의 마음상담소’는 창업가들의 정신건강 관리가 건강하고 바람직한 문화로 안착했으면 하는 투자자와 스타트업, 지원기관들이 힘을 모았다. 스스로 자신을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부터 창업가들이 서로 위로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연대의 장,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상담까지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스타트업 창업자는 전문가 상담을 하고서야 비로소 “내가 힘든 게 맞았구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누구나 힘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창업가들의 마음상담소’가 창업가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에 있는 ‘모두의 마음상담소’로 커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