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대표 사업장 서울교통공사의 최근 직원 현황은 온정주의 정책이 약자를 저격하는 역설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2018년 무기계약직 1285명을 일반직으로 전환하기 직전(2017년) 23%이던 교통공사의 ‘고졸 이하 직원’ 비중은 지난해 15%로 추락했다. 같은 기간 ‘대졸 이상 직원’ 비중은 54%에서 64%로 급증했다. ‘취업 약자들의 고용 안정을 돕겠다’며 밀어붙인 정규직화가 기대와 달리 고졸·전문대졸 등 약자층을 타격한 어처구니없는 결과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여성과 장년층 일자리도 잠식했다. 서울지하철 1~8호선 운영사인 교통공사의 조리직은 당초 여성 및 저학력 장년자가 많았다. 하지만 정규직화가 가속화하자 2020년 공채 때는 입사자 53명 중 47명이 대졸자로 채워졌다. 석사도 3명 포함됐다. 또 남성 입사자가 42명으로 여성(11명)의 4배에 육박했다. 대규모 정규직화를 단행한 지 5년 만에 남성·고학력자에게 밀려 여성·저학력자가 고용시장 주변으로 밀려나는 뼈아픈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무늬만 포용 정책’의 부작용은 이전에도 수없이 확인된 바다. 다락처럼 치솟은 최저임금이 양극화를 심화한 게 대표적이다. 최저임금이 16.4% 급등한 2019년에는 1분위(최하위 20%) 가구의 근로소득이 47.1% 쪼그라들었다. ‘취업차별을 없애겠다’며 도입한 블라인드 채용도 기대와 정반대 결과를 불렀다. 2013년 400명대였던 4대 시중은행 고졸 입사자는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간신히 100명대를 지키고 있다.

약자의 눈물은 그대로 누군가의 부당이득으로 돌아갔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정규직 전환자의 15%(192명)가 재직자들의 인척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으로 10대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인원이 4만9000여 명에 달했지만, 양질의 청년 일자리인 공기업 신규 채용은 반토막 나고 말았다. 약자 보호를 빌미 삼는 ‘청개구리 정책’의 예고된 비극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