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집권 여당인 신민주주의당(신민당)이 지난 21일 치러진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급진좌파연합에 큰 격차로 다시 승리한 것은 포퓰리즘과 절연하고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국민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망국병’ 포퓰리즘은 1980년까지 50년간 연평균 5.2%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남유럽 최강국 그리스를 순식간에 ‘유럽의 문제아’로 바꿔놨다. 40여 년 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좌파 정권은 집권에 성공하자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는 구호와 함께 국가 전체를 ‘공짜 중독’에 빠뜨렸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전 계층 무상 의료·무료 교육, 보편적 복지, 연금 수령액 인상 등 선심성 정책을 대거 쏟아냈다. 그 대가는 재정 파탄이었다. 그리스는 2010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 채권단으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스를 구렁텅이에서 탈출시킨 것은 국민의 뒤늦은 자각과 반성이었다. 2019년 미국 하버드대 출신 경제 전문가인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가 이끄는 신민당에 정권을 맡겼다. 그는 고질병이던 재정난과 연금 제도를 수술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주도했다.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섰고,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국가 신용등급도 회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그리스의 모습은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첫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을 비롯해 기초연금 인상, 전 국민 기본대출 등 야당의 선심성 정책이 줄을 잇고 있다. 국민의힘이 ‘1000원 아침밥’ 사업을 전 대학으로 늘리자 더불어민주당은 대상을 비대학생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는 등 ‘퍼주기’에는 여야가 한통속이다. 그러는 사이 나라 살림은 거덜 나고 있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넘어섰다. 1분에 1억원씩 늘어나는 나랏빚 때문에 앞으로 4년간 부담해야 할 이자만 100조원에 이른다.

그리스는 포퓰리즘의 교과서다. 대중 인기영합주의가 어떻게 나라를 망치고, 그 중독에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타산지석이다. 한국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내년 총선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