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당시 유창근 현대상선 대표(왼쪽)와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VLCC 5척에 대한 건조의향서(LOI·Letter of Intent)를 체결하고 기념촬영했다. / 사진=HMM 제공
2017년 4월 당시 유창근 현대상선 대표(왼쪽)와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VLCC 5척에 대한 건조의향서(LOI·Letter of Intent)를 체결하고 기념촬영했다. / 사진=HMM 제공
2012년 2년간의 공백을 거쳐 첫 번째로 현대상선 사장에 취임했을 때도 현대상선은 부채비율이 높아 선박 신조는 꿈도 못 꿨다. 당시 신조를 위한 부채비율 상한선은 400%였는데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해운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숫자였다.

정책당국은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변화에 주목하기보다는 재벌 그룹 소속 선사와 중소 선사에 대한 불공정 지원에 대한 불만에 더 관심을 보였다. 또한 늘 그러했듯 선사보다는 그 당시 일감이 부족했던 조선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선사에 대한 정책 금융은 이야기도 꺼낼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 해운시장은 급변하고 있었고 유가로 인해 시장에서는 저속 운항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이러한 추세에 부합하는 연비 좋은 초대형선을 선점한 머스크, MSC 등에 비해 여러 가지 이유로 실기(失期)한 선사들은 재정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현대상선 사장으로 취임했던 2016년에는 최악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포기해 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바뀌어 있었다. 더욱이 취임하자마자 터진 한진해운 사태로 인해 취임 초기 산업은행과의 접촉은 주로 한진해운 사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형선 지어 마케팅할 자신 있습니까?"…의기투합해 난관 돌파 [유창근의 육필 회고]
어느 정도 한진해운 사태가 안정되기 시작할 무렵인 2016년 10월 말, 앞선 4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는 예상외로 신속하게 제6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해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탱커선 건조의 길을 열어줬다. 이에 필요한 금융지원은 현대상선 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이 주도했는데 당시 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 담당 정용석 부행장이 이를 주관하고 있었다.

기업 구조조정에 오랜 경험을 지닌 정 부행장은 경영자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뒤에서 적극 지원하는 금융계에선 보기 드문 선이 굵은 인물이었다. 2012년 이미 산업은행과 업무상 접촉 경험이 있어 금융지원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정 부행장의 신조 계획에 대한 적극적 지원은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것이었다.

한진 사태를 수습하면서 서로 간에 쌓은 신뢰가 바탕이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정 부행장의 이 같은 지원은 신조에 대한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컨테이너 산업 역사에서 자주 회자되는 만남, 즉 컨테이너의 창시자이며 시랜드(Sea-Land)를 설립한 말콤 맥린(Malcom McLean)과 금융인 씨티은행(Citibank) 월터 뤼스톤(Walter B. Wriston)의 만남이나 대만 에버그린 설립자 창융파(Chang Yung-fa) 회장과 일본 종합상사 마루베니(Marubeni Corporation) 코요시 호사카(Koyoshi Hosaka)의 만남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정 부행장의 적극 지원 하에 대형 유조선 5척,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1만2000TEU 컨테이너선 2척을 포함해 총 27척의 신조가 확보됐고 이것이 오늘날 HMM의 천문학적 수익의 근원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로서는 한 차례 현대상선의 수장으로 정상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경험이 있어 위기의 현대상선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인천항만공사 사장 임기 중에 현대상선이란 난파선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금융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실상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초대형 선박 27척에 들어가는 5조원 이상의 투자 사업에 실패했을 때 받아야 할 국민적 비난 위험을 감수하고 나와 현대상선을 믿고 뒤에서 적극 지원해준 당시 이동걸 회장, 정용석 부행장과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엄기두 해운물류국장 등 산업은행 실무진에게 현대상선을 대표해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금융계에서 해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지원해 큰 열매를 맺는 금융인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출처=HMM 제공
출처=HMM 제공
한진 사태 충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면서 2M과의 협력 계약이 성사되고 산업은행으로부터 신조에 대한 지원을 확인했다. 이에 나는 2017년 10월 TPM(Trans-Pacific Maritime) 선언 이후 다음 단계로 2020년에 투입할 초대형선의 발주와 대폭 늘어나는 선복(적화공간)을 채우기 위한 영업 강화, 2020년 이후의 얼라이언스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그러나 국내외의 거센 반대와 부정적 시각에 시달려야 했다. 초창기 국내의 현대상선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한진 사태와 연관된 것으로 보였다. 예상치 않은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나는 그러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만일 그러한 일이 현대상선에 벌어졌다면 나도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특히 부산을 중심으로 한진해운에 대한 동정 여론이 높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문가들 사이에도 현대상선에 대한 불신과 나아가 신조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거세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학계도 “산은이 현대상선을 관리하면서 회사를 회복시킨 후 팔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는 대우조선과 똑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거나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상선에 추가로 자금 지원하면 국민 혈세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현대상선을 키워서 뭘 하겠다는 정부 방향성이 없다. 한진해운을 청산시키고 해운업을 살리겠다는 정부 태도가 너무 안일하다” 같은 초대형선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언론에 쏟아내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2017년 정권이 바뀐 뒤 2018년 새로 선임된 산업은행 경영진과 당시 갓 설립한 한국해양진흥공사 경영진은 초대형선 신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는 것이었다. 현대상선에 대한 지원도 소극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당시 이들 기관의 경영진 중에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중지를 청와대에 건의할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만일 그때 조선소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단계였다면 실제 취소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었다. 소위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이 초대형선은 한진해운이 지어야 성공하며 현대상선은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근거 없는 부정적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한다. 2020년 초대형선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자 부정적 시각을 내비치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초대형선 건조를 다투듯 자기 공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대한민국 해운강국의 길 - 유창근 전 HMM 대표 육필 회고] 6편으로 이어집니다.
(1) 망했다던 해운산업 살려낸 '위기극복 DNA' 지금 필요하다
(2)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해운 위상…'재도약' 선언하다
(3) 초유의 한진해운 사태 수습…"숨 가빴던 나날들"
(4) '초대형선 건조' 길 열어준 발 빠른 정부 조치
(5) "대형선 지어 마케팅할 자신 있습니까?"…의기투합해 난관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