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외로운 중국'에 먼저 손 내밀때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적 방미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한했다.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숙원인 한·미·일 공조 체제가 구축돼가는 것 같다. 그런데 베이징이 이 같은 친미 행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북한·러시아 3각 연대 차원의 보복이 있을 것이다.” 워싱턴 선언 후 대륙에서 흘러나온 경고다. 이 같은 반응을 보면 베이징이 역사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붉은 중국은 북한, 러시아(옛 소련)와 손잡았을 때 기울었고 미국, 한국과 함께할 때 번영했다. 북·러가 합작한 남침에 말려들어 오랜 기간 죽의 장막에 갇혀 국가 발전의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 러시아를 버리고 미국과 수교하고 한국과 무역하며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또한 한·미 동맹의 기원을 찾으면 70여 년 전 베이징의 오판도 상당히 기여(!)했다. 평양과 모스크바가 남침을 음모할 때 처음에 부정적이었던 베이징이 끝까지 반대했다면, 6·25전쟁도 일어나지 않았고 지금 한반도에 주한 미군도 없을 것이다.

우리도 격상된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가 제로섬 게임을 하게 해선 안 된다. 요즘 베이징이 늑대외교의 독설을 퍼붓지만, 속내를 보면 은근한 유화의 제스처도 함께 보내고 있다. 지난달 시진핑 주석이 이례적으로 광저우의 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한 것이 그 예다.

지금 ‘차이나’는 외롭다. 친중 국가마저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있다. 남중국해 영토분쟁으로 한때 혈맹이던 베트남은 물론, 그간 엄청나게 공들여 겨우 친중으로 만든 필리핀마저 미국과 역대급 군사훈련을 하며 친미로 변색했다. 미국, 인도 등 14개국이 손잡고 반중(反中)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구축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외국 기업들이 ‘탈중국’하며 짐을 싸고 있다. 그렇게 차이나를 짝사랑(!)하던 애플조차 아이폰 생산기지를 인도로 옮길 기세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중국 대륙에 남아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생산하고 미국을 설득해 반도체법의 ‘10년간 중국 투자금지’ 독소조항 숨통을 튼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중 협력의 새로운 물꼬를 트려면 중국은 역사 인식을 바로 해 오만한 중화주의에서 벗어나고, 우리도 사대주의 틀을 깨고 중국과 당당히 맞서 따질 건 따지고 협력할 건 협력해야 한다. 주요 8개국(G8) 가입이 회자할 정도로 명실상부한 ‘미들 파워’ 국가로 부상한 대한민국은 속절없이 당하던 사드 보복 때의 ‘그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먼저 외로운 대국에 손을 내밀어 적극적인 경제외교를 펼쳐야 한다. 얼마 전 인천에서 한·중·일 재무장관이 만나 3국 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일단 분위기는 조성됐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전후에 경제부총리가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에 가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업그레이드를 제안해 협력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두 나라가 서로 만나야 소통하고 갈등이 해소되고 협력할 수 있다.

우리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중국과 새로운 산업협력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인건비가 올라가고, 경쟁력이 향상된 중국과의 협력 대상 산업은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두 나라가 함께할 수 있는 분야는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희토류, 미래 모빌리티 등이다.

조금 얄밉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양면 실리외교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 워싱턴에 가서 국빈 대접 잘 받고, 베이징에 가서는 세일즈 외교로 경제적 실익을 챙겼다. 군사동맹에서는 미국이 ‘갑’이다. 하지만 산업동맹에서는 그렇지 않다. 반도체, 배터리 등 산업 이슈를 다룰 땐 우리가 상당한 협상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워싱턴과 잘 협상하면 한·미·중 세 나라가 ‘윈-윈’ 할 절묘한 산업 협력을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진정한 대미 외교의 극치는 ‘친미반중’이 아니라 ‘친미화중(親美和中)’이다. 확고한 한·미 안보동맹과 함께 최대 무역·투자 대상국이며 북핵 문제 해결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 경제 협력하는 것이다.

과거 진보 정권이기에 한·미 FTA가 가능했다. 보수 정부였으면 정권이 좌초했을지 모른다.

지금 한·중 관계도 비슷하다. 워싱턴이 신뢰하는 보수 정권이기에 중국과 새로운 경제 협력의 장을 여는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