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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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비서였던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가 발견한 ‘공기에 무게가 있다’는 통찰을 토대로 토머스 뉴커먼이 증기기관을 만들면서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 성과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유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혁명 이전 영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도 훌륭한 기술은 얼마든지 많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동기의 부재

조지프 슘페터는 어떤 기술이 사회에 채택되려면 무엇보다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노예가 기계보다 저렴했고, 이 점이 비싼 기계를 개발하고 채택할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노예는 산업화 이전 시대의 로봇이었다. 실제 헝가리에서는 봉건 영주를 대신해 일하는 무보수 농노를 ‘로보트닉’이라고 불렀다.

노예는 오늘날 어떤 로봇 테크놀로지로 달성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다양한 육체 노동이 가능했다. 물론 논쟁의 소지가 많은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기계화의 인센티브는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라 노동의 가격이라는 점이다.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노동 가격은 낮았다. 1927년 미시시피강 범람으로 흑인 가족이 일자리를 찾아 범람 지역을 떠나자 노동력 손실이 불가피한 농장주들은 비로소 기계화 방향으로 선회했다.

반대 주장도 있다. 산업화 이전 세상에서는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기존 수요에 대응해 기술이 개발된 것이 아니라 산발적이고 우연한 기술 발전이 전에 없던 새로운 욕구와 수요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당시의 혁신은 부담은 크고 보상은 작았다는 점이다. 대량생산이 어려웠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가 실패할 경우 곧바로 기업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혁신은 다른 장소로 확산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정치환경의 변화

산업화 이전 세상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은 정치환경의 변화다. 대런 애쓰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대서양 무역의 팽창으로 왕권이 제한되는 정치구조로 변화하면서 상인 집단의 힘이 커져 산업 및 기술 발전에 유리한 제도 개혁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는 왕실이 아니라 상인 집단이 무역의 핵심 수혜자인 국가, 그리고 왕권 중심의 절대주의 제도를 갖지 않은 영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국가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영국은 튜더와 스튜어트 왕조가 왕실 독점 기업을 설립하려던 시도를 의회가 막아냈고, 그 결과 무역은 보통 상인들의 영역이 됐다. 당시 왕실이 무역을 독점했던 다른 유럽과는 달랐다. 네덜란드도 비슷하다. 대서양 무역과 관련한 상업적 이해관계가 상인들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갈등으로 번졌고, 이는 1570년대 독립전쟁으로 확산된다. 그 결과 상인들이 정치 세력을 이루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성장했다.

‘굴뚝 귀족 계급’의 부상은 혁신가들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이어졌다. 과거 노동자와 길드의 반대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두려워 이들 편을 들던 정부는 혁신가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기계 사용에 대해 반대 청원을 하는 방적공, 전당공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상인 제조업자들이 정치적으로 강한 힘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인 제조업자들의 부는 대영제국의 무역 성공에 달려 있었고, 이는 기계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때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는 1769년 절정에 달한다. 기계 파괴를 사형으로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기술을 통한 번영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결국 혁신은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그 채택이 의사결정자에게 유리한 구조가 됐을 때 가능해진다. 지주계급이 강한 정치력을 갖던 과거에는 발전보다 지대추구가 유리해 체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도전을 잠재우는 편이 나았지만, 상인 제조업자들이 정치권력을 갖자 이 역학구조는 반대로 작용했다. 경제학자 프리츠 마흘루프가 언급했듯, 고된 노동은 인센티브를 필요로 하지만, 번뜩이는 천재성은 그렇지 않다. 번뜩이는 천재성은 산업혁명 이전에나 이후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기계에 투자할 인센티브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구성원의 경제적 인센티브와 맞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기업이, 정부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기술 발전이 아니라 기술을 통한 발전임을 다시금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