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韓銀, 섣부른 낙관론 경계해야
최근 발표된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의 예상을 밑돌면서 드디어 인플레이션이 잡혔다는 인식과 함께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완화 시점이 가까워졌다는 낙관적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미국의 10월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7.7%로 여전히 높다. 최근 3개월 연속 둔화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확실성이 크다. 국제 유가와 곡물가의 재상승 가능성도 있지만 이보다 더 주목할 것은 기대 인플레이션의 오름세다.

미국 뉴욕연방은행과 미시간대에서 각각 발표한 장·단기 기대 인플레이션은 9월부터 다시 상승하고 있다. 특히 향후 5년 기대 인플레이션의 최신 발표치는 2.4%와 3.0%로 Fed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연 2%보다 높다. 기대 인플레이션의 상승은 기업이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올리거나 근로자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기준이 돼 실제로 물가를 끌어올린다.

더욱이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Fed의 목표치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현재의 통화정책으로 물가를 잡기 어렵다는 기대가 형성된다는 의미다. 이런 기대가 현실화해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기업의 장기적인 투자 결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경제성장 기반이 훼손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 수준에 안착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에 대한 민간의 신뢰도가 높을 때 조절이 쉽다. 반면 통화정책의 신뢰도가 낮으면 인플레이션에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해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락하지 않아 물가를 잡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미국은 통화정책의 낮은 신뢰도로 인해 1980년대 초반 큰 경제적 비용을 치렀다.

1970년대 Fed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다가 실업률이 오르면 기준금리를 낮추는 ‘스톱 앤드 고(stop and go)’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통화정책 전환으로 인플레이션의 재상승을 불러왔다. 거듭된 스톱 앤드 고 정책 후 1980년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4%까지 치솟았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높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13%를 넘어섰다.

이에 폴 볼커 전 Fed 의장은 스톱 앤드 고 정책을 폐기하고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했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는 1981~1982년 총생산의 누적 하락 폭이 20%에 달하는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지만 10여 년에 걸친 고물가 시대는 드디어 막을 내렸다.

통화정책 석학인 마빈 굿프렌드와 로버트 킹은 2005년 논문에서 1981~1982년 침체가 극심했던 이유로 통화정책의 낮은 신뢰도를 꼽았다. 이번에도 Fed가 물가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민간의 기대 때문에 기대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하락하지 않아 극심한 경기 침체를 초래할 정도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Fed의 긴축 기조가 완화되지 않는 한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을 멈출 수 없다. 다만 금융 불안에 대한 우려로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은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시장에 섣부른 낙관론이 확산하지 않도록 한은이 물가 안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시장의 장밋빛 환상이 부메랑이 돼 통화정책의 신뢰도를 깎아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