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량 기준 세계 3위였던 미국계 암호화폐거래소 FTX의 위기는 암호화폐 시장의 부실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FTX가 자체 코인(FTT)을 찍어 자회사인 헤지펀드에 빌려줬고, 자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달러 담보대출을 받아 다시 FTT를 매수하는 식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고 자산을 부풀린 것으로 알려졌다. FTX의 급성장이 ‘폰지(다단계 금융) 사기’ 아니었냐는 의혹을 받는 대목이다. FTT를 보유한 국내 투자자도 6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 위기를 놓고 ‘코인계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온) 리먼브러더스 사태’(뉴욕타임스)라는 지적과 함께 ‘가상자산 산업 자체가 벼랑 끝에 섰다’(블룸버그통신)는 우려가 나온다. FTX로부터 투자받은 핀테크 업체 로빈후드 주가가 폭락하고, FTX 그룹에 투자나 대출을 해준 블랙록과 세쿼이아캐피털 등도 줄줄이 피해를 보면서 파장은 기존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정도다. ‘코인계의 워런 버핏’으로 평가받던 30살의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도 한낱 사기꾼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지난 5월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암호화폐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면 FTX 위기는 거래 시스템 전반에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화폐처럼 내재가치를 갖지 않은 암호화폐는 참여자 신뢰가 유일한 담보다. 이번 사태를 거울 삼아 국내 거래소가 신뢰 제고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신뢰는 책임을 기반으로 하며, 책임의 키워드는 ‘투명’과 ‘안전’이다.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큼 거래소 스스로 재무 상태와 자산 건전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해킹 위협에 대비하고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동시에 투자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기본이다. 돈만 벌고 책임은 뒷전이라는 비난이 이어진다면 섣부른 규제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가격 변동성과 시스템 리스크는 암호화폐 시장에 내재한 위험인 만큼 투자자도 ‘자기 책임의 원칙’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