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고금리 적금의 부활?
봉급 생활자들이 저축만 해도 잘 먹고 살 수 있던 때가 있었다. 1960~1980년대 경제개발 시대 얘기다. 정부는 부족한 산업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절약하는 남편 되고, 저축하는 아내 되자’ 등의 표어를 걸고 가계 저축을 독려했다. 당시 금리는 연 30%대에 육박했다. 1988년 가계저축률은 24.3%까지 올랐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저축보다 소비를 장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두 자릿수 이자를 주는 예·적금 상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저금리·저물가·저성장 시대를 거치며 고금리 예금상품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의 아득한 추억이 돼 버렸다. 은행권에 머물던 자금은 투자의 시대를 맞아 펀드로, 꼬마 빌딩으로, 암호화폐로 대거 흘러 들어갔다.

최근 연 10%대 고금리 적금상품이 부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마케팅 목적이다. 시중 예금금리(연 3%대)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미끼로, 시중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다. 대신 고금리 부여 조건이 까다롭고, 납입 한도도 적다. 연 11%까지 주는 S은행 플랫폼 적금(자유적립식)은 월 30만원 한도로 6개월간 납입할 수 있다. 기본 금리는 연 2%지만, 신규 가입자여야 하고 협력사인 야쿠르트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얼마어치를 사야 하는 등 복잡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우대금리(연 9%)를 적용받을 수 있다. 가입 기간에 수백만보를 걸어야 하는 조건을 내건 금융회사도 있다.

미끼 상품인 게 분명한데도 이런 상품들은 출시와 함께 ‘완판’ 행렬이다. 금리 발작으로 증시와 부동산, 암호화폐 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대안으로 고금리 예금상품에 몰리고 있어서다. 증시에서 은행권으로, 요구불식 예금에서 정기 예·적금 상품으로의 ‘머니 무브’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고금리 상품 출시 붐에는 새 정부의 금융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과 함께 금융권의 이자 장사 관행을 비판하며 예대금리차 공시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금융권이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고금리 예금상품을 내놓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고금리 예금상품이 ‘반짝 인기’였다. 이번에도 ‘길고 추운’ 경기 침체 전 일시적 현상일 것이란 분석이다. 고금리 예금상품의 부활을 마냥 반기기 힘든 이유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