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 안에 ‘사용후 핵연료’ 지상 저장시설을 짓기로 했다는 보도다. 영구적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없어 임시 저장시설(원전 내 건식 저장시설) 건립에 나선 것이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1978년 국내에서 원전을 처음 가동한 이후 40년 넘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난제다. 지역 반발을 우려해 어느 정부도 나서지 못했다. 임시 방폐장 건립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야가 방폐장 설치 절차 등을 담은 ‘고준위방폐장특별법’ 세 건을 발의한 만큼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더 시급한 문제는 문재인 정부 5년간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되살리는 일이다.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고 빠져나간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원자력 기술 격차는 1년으로 줄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원전 업체 31곳을 조사한 결과 ‘전문인력 부족’을 가장 큰 애로로 꼽을 정도로 인력 유출이 심각하다. 문 정부 5년간 원전 수출은 ‘제로(0)’였으며, 관련 기업들이 줄도산했다.

탈원전의 상처가 크고 깊은데,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일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들이 신한울 1호기 가동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원자력연구원이 세 차례 실험으로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믿을 수 없다’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한다. 노용호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한 결과 문 정부가 건설을 중단 또는 백지화한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를 완공해 가동할 경우 2050년까지 약 30조원의 발전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난으로 원전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대표적 탈원전 국가인 독일조차 원전 두 곳의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유지해오던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정책을 포기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도 원전 확대를 천명했다.

30조원짜리 체코 원전 프로젝트가 본입찰을 앞두고 있다. 또 40조원에 달하는 폴란드 신규 원전 건설과 12조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사업 등이 예정된 만큼 민관의 역량을 서둘러 결집해야 한다. 원전 산업을 성장과 수출 동력으로 삼으려면 생태계 복원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