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를 개편하는 방안을 내놨다. 폭증한 나랏빚을 제어하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재정 중독과 상습적인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빠져 ‘재정적자 100조원,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를 열었다. 고령화 추세와 복지 지출 등을 감안할 때 이대로 가면 국가 재정 파탄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준칙은 재정 운용 기조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도출하고, 재정구조 혁신 추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에 설계한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어서면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을 담았다. 엄격하고 정확한 관리를 위해 통합재정수지 대신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뺀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활용하고, 중장기 목표로 국가채무 수준을 설정하는 동시에 연간 재정 운용 목표도 함께 제시한 데서 재정 건전화를 위한 정부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을 위반했을 때다. 재정준칙을 시행령이 아니라 법률로 규정해 구속력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헌법에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를 밥 먹듯이 어겨온 게 현실 아닌가. 재정준칙 이행에 대한 강제 장치가 없다면 또 한 번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타 제도 개편안 역시 지난 정부 5년간 예타를 면제한 사업비 규모가 120조원에 달할 정도로 비정상화한 것을 정상화로 돌려놓는 조치다. 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해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지만 이 또한 무수한 편법과 ‘조건부’ 규정에 둑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1999년 도입한 예타가 평가항목 가운데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의 가중치를 수시로 바꾸는 방식으로 오히려 정권 입맛에 맞춰 경제성 없는 사업에 면죄부를 줘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국가균형발전’이란 미명 아래 전국적으로 23개 사업을 선정하고, 예타를 일괄 면제하기도 했다. 나랏돈을 허투루 쓰지 못하도록 막는 규율을 강제하는 수단과 함께 정권을 거쳐 지속 가능하도록 담보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