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수교 이후 30년 가까이 지속된 대(對)중국 무역과 기술의 우위가 역전됐다. 주요국의 기술 수준을 2년마다 평가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기술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중국에 평균 3년 앞섰던 한국의 기술 수준이 2020년에는 0.1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 무역수지도 지난 5월 처음 적자로 돌아선 이후 적자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교 첫해 석 달 동안 적자를 낸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도시 봉쇄, 원자재값 상승, 소비 위축에 따른 중간재 주문 감소 등 일시적 요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술 격차 축소 내지 역전에 따른 경쟁우위 상실이 무역적자를 구조화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경제·문화·사회적 수준이 20년 이상 퇴보한 예전의 어설픈 중국은 이제 없다. 절치부심하며 기술 개발에 투자한 결과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거의 없앴거나 역전시켰다. 2010년에는 KISTEP 조사 대상 가운데 우주·항공을 뺀 전 부문에서 한국이 앞섰으나 2020년에는 의료,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 에너지·자원 등 4개 부문에서 중국이 한국을 0.1~0.3년 앞섰다. 특히 바이오·ICT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한 게 뼈아프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 가상현실 기술도 중국에 1년씩 뒤처졌다. 반도체 분야의 격차도 크게 좁혀져 어물어물하다가는 따라잡힐 위기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원자력 기술 격차는 3년에서 1년으로 좁혀졌다.

기술 경쟁력을 키운 중국은 한국과의 수직적 분업 시대에서 벗어나 수평적 경쟁 체제로 접어들었다. 한국에서 수입하던 중간재 대부분을 직접 생산해 완제품을 만든다. 오히려 한국의 중국산 중간재 수입 비중이 크게 늘어 전체 중국 수입품의 60%를 넘을 정도다. 중국은 가전부터 철강, 조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따라잡았거나 제쳤다. 과거 중국시장을 지배했던 한국산 휴대폰, 자동차, 화장품 등의 점유율은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 배터리산업도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

구조적 대중 무역적자에서 벗어나는 길은 기술 초격차뿐이다. 앞선 분야의 기술 격차는 유지하거나 더 벌리고, 역전을 허용한 분야에선 다시 따라잡아야 한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 AI,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산업에서 추격자가 돼서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제 경기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단지 기공식에서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며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혁신을 주도해 또 한 번의 큰 도약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