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기업인과 자영업자, 서민생계형 사범 1693명에 대한 8·15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국정농단 사건 유죄 판결로 취업이 5년간 제한됐던 이 부회장은 복권돼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국정농단 사건과 업무상 배임으로 2019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신 회장도 사면·복권됐다. 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정치권 인사가 제외되고 기업인 사면도 당초 기대보다 적어 경제계 및 여권 일각에서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것이 민생이고, 민생은 경제가 활발히 돌아갈 때 숨통이 트이기 때문에 거기에 방점을 둔 것”이라고 ‘핀셋 특사’ 배경을 설명했다. ‘발등의 불’인 수출입 시장 다변화와 공급망 확보를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인의 역할이 더 없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 부회장과 신 회장 같은 기업인이 해외 원자재를 확보하고 수출처를 개척하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달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번 특사의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이 부회장이 받았다. 작년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그는 지난달 형기가 만료됐지만,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른 취업제한에 발이 묶여 있었다. 이 부회장은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힘을 보태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복권이 발표된 날에도 재판에 나가는 등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검찰과 재판부가 이번 특사의 취지를 살려 정황을 참작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재판 중인 불법 승계 및 분식회계 혐의는 대검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는데도 문재인 정권의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사안이다.

이 부회장의 리더십은 지금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스마트폰과 TV·가전 부문의 실적 악화 속에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70%를 차지하는 반도체마저 부진의 늪에 빠져드는 상황이다. D램 가격이 하락하면서 미국 마이크론이 실적 전망을 낮추는 등 ‘반도체 혹한기’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칩4 동맹 등을 통해 중국 배제를 노골화하고 있어 삼성의 전략적 대응도 중요해졌다.

경제안보의 핵심 기업인 삼성 사령탑으로서 이 부회장은 무엇보다 국가 간 총력전이 된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기술적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대만 TSMC가 장악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의 판을 뒤집으려면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 공정 양산을 시작한 것처럼 기술 초격차에 바탕을 둔 승부수가 계속 나와야 한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삼성의 대형 M&A는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9조4000억원에 인수한 게 마지막이다. 향후 5년간 반도체, 바이오, 인공지능(AI), 차세대 통신 등에 450조원(국내 360조원)을 쏟아붓기로 한 미래 투자 계획도 차질 없이 이뤄져야 한다. 엄중한 시기에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이 부회장의 어깨는 천근만근일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 복귀를 바란 많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발휘해 삼성 특유의 도전 정신과 혁신 DNA를 되살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