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우영우 vs 리갈하이
요즘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때아닌 논란에 휩싸였다. 보험회사의 부부 사원 구조조정을 다룬 12화(4일)에서 불거졌다. 실제 사건의 해고자 변호인 중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있었는데, 드라마에선 마냥 긍정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박은빈 분)의 찰진 연기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실감성 덕분에 인기를 모은 웰메이드 드라마가 종영 2주를 앞두고 유명세(稅)까지 치르게 생겼다. 여기서 ‘우영우’가 속칭 페미 드라마인지 따질 생각은 전혀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 달리 보일 수 있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넘쳐나는 법정 드라마 속에 따져볼 대목은 따로 있다. 변호사란 어떤 직업인가 하는 점이다. 영화·드라마 속 변호사는 대개 둘 중 하나다. 돈만 밝히는 속물이 대오각성하거나, 약자를 돕는 정의의 사도로 그려진다. 변호사를 바라보는 대중의 로망은 ‘불의와 싸우고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다. 그런 환상이 영화·드라마에 투영되고, 부지불식중에 ‘변호사=정의롭다’고 착각한다. 정치판에 허울 좋은 변호사들이 넘쳐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우영우는 훌륭한 변호사인가. 서울대 로스쿨 수석에 법전을 달달 외고, 남다른 시각으로 재판을 반전시키는 능력은 변호사로서 우수한 자질이다. 하지만 주관적 가치에 기울어 의뢰인보다 재판 상대방과 더 교감하고, 의뢰인 비밀을 누설하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이런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고 싶은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변호사란 업(業)의 본질은 ‘법적 조력자’이지 ‘정의 구현자’나 ‘진실 수호자’가 아니다. 의뢰인을 위해 적법하게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다. 일본 변호사법을 베낀 한국 변호사법은 1조1항에 ‘사회정의 실현’을 변호사의 사명으로 명시해 현실과 명분의 괴리를 키웠다. “내 의뢰인은 절대 빵에 보내지 않는다”는 오수재(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주인공)가 차라리 변호사로서 솔직하다.

변호사는 악인도 변호할 수 있다. 변호사 윤리헌장 16조에선 ‘사건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럴 수 없는 처지면 국선변호인을 붙여준다. 이는 헌법(12조 4항)에 보장된 권리다. 대통령으로서 탈북자 북송 재가로 비난받더라도, 변호사 문재인이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범을 변호했다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그게 본분이기 때문이다.

우영우와 대비되는 인물이 일본 드라마 ‘리갈하이’의 고미카도다. 그는 돈을 좋아하고,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승률 100%를 유지하며, 직업윤리마저 우습게 아는 속물이다. 절대적 정의(특히 민사)란 존재하지 않으며, 변호사는 정의가 아니라 의뢰인의 재판 승리가 우선이란 그의 신념은 대중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일갈은 두고두고 곱씹어보게 된다. “우리는 신도 아니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우월감에 사로잡힌 동정심으론 눈앞에 있는 불쌍한 사람만 가련하게 볼 뿐이다.” “진짜 악마는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민의(民意)다. 재판에 민의를 가져오면 사법은 끝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사안을 평면적·단선적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짙다. 세상은 선과 악, 강자와 약자, 피해자와 가해자, 공익과 사익, 좋은 분과 나쁜 놈으로 구성돼 있다는 식이다. 거기에서 내로남불이 싹트고 진영 논리가 진을 친다.

자신은 옳고 선하다는 확증 편향에 빠진 이들 간에 합의 도출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두부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 갑(甲)이 때론 을(乙)이 되고, 을도 누군가에겐 갑이 된다. 선악이 뒤바뀌고, 공익과 사익이 뒤섞인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고, 타인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복잡하게 나쁜 사람’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현실의 숱한 갈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의 지배(법치)’와 불편부당한 사법제도가 필수조건이다. 수시로 바뀌는 여론이나 권력의 눈치 보기가 아니라,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 먹고살 만해졌어도 정신적 숙성은 한참 멀었다. 법의 지배와 사법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로 세울 때 진정한 선진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