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도어스테핑에서 “금융리스크는 뒷수습보다 선제적인 적기 조치가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대통령 지적대로 금융리스크는 비금융 실물 분야보다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만큼 부실의 사전 차단이 핵심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125조원+α’의 금융부문 민생안정대책은 온정적이고 느슨하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 사태 후 2년 넘게 지속돼 온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라는 긴급 금융구호체계 중단은 평가해줄 만한 결단이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눈치를 보느라 앞선 정부가 4번이나 만기를 연장하는 바람에 금융리스크가 너무 커졌다. ‘무조건 지원’이라는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상환 부담을 관리해가는 채무 조정 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위기관리 의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안이하고 구체성도 부족하다. 정부는 9월 말로 끝나는 64조원의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액의 90~95%를 재연장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관리제’를 도입해 금융사가 자율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설명이지만 ‘자율’과 90~95%의 높은 재연장률은 이율배반적이다. 부실 확산을 막기 위해선 높은 재연장률을 정부가 강제하기보다 위험관리 전문가인 금융사의 자율 판단을 더 존중해주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피해자인 자영업자에 대한 일정한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과도한 모럴해저드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90일 이상 연체자에게 적용하기로 한 새출발기금의 원금 60~90% 대폭 탕감은 성실히 대출을 갚아온 이들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비슷한 일을 상시 수행하는 캠코의 부실채권 감면율(30~60%)을 고려해 형평에 맞는 재검토가 요청된다. 저신용 청년의 빚을 30~50% 깎아주는 ‘청년특례 신속채무조정’ 프로그램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무리한 코인·주식 투자가 많았던 청년층에 ‘젊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혜택이 돌아간다면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구심을 부를 수밖에 없다.

정책 디테일 부족과 강압적 방식도 지적된다. 차주마다 다르게 적용될 새출발기금의 60~90% 원금 감면율을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지 미정이다. 또 금융회사들은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관리제’를 두고 금융당국과 협의한 적이 없다며 당황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이 사상 첫 빅스텝을 밟은 바로 다음날 덜 정제된 정책을 불쑥 던진 것도 미덥지 못하다. 금융시스템 안정 차원에서 서둘러야 한다고 판단했겠지만 그럴수록 민간과 머리를 맞대고 차분히 해법을 찾는 게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