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일본 정상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3각 협력을 복원하기로 한 것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소리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스페인 마드리드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그제 미·일 정상과 만나 “3국 협력이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며 원칙에 따른 강력한 대북 대응을 제안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미·일 3각 협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 우리의 공통 목표 달성에 매우 중요하다”고 했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약 25분간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의는 상견례 성격이 강하지만,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다. 세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자체가 2017년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 이후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의 반일 몰이로 뒷전으로 밀렸던 한·미·일 공조가 4년9개월 만에 정상화 궤도에 오른 것이다. 더욱이 북한이 올 들어서만 18차례 미사일을 쏘면서 7차 핵실험도 공공연히 예고한 시점이다.

물론 세 정상이 만났다고 해서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길 바라는 것은 성급하다. 그만큼 과제가 많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재차 약속했고, 세 정상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기조도 재확인했다. 대북 CVID 촉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도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확장억제 약속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담겼다. 그런 만큼 김정은이 겁먹을 만한 강력하고 실효적인 플랜들을 조속히 내놔 말로만 그치지 않겠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양국 간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하루빨리 가동해 억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달로 예정된 한·미 훈련에선 대북 대응 차원이 확 달라졌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줄 필요도 있다.

3국 정상회의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북한 핵·미사일 개발 자금줄을 끊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이다. 유류와 현금 등 북한 유입을 제한하는 유엔 제재가 가동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뒷구멍’이 되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온 지 오래다. 이번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와 별도로 미국 주도로 암호화폐 해킹 등 북한의 돈줄을 차단하는 일에 본격 나서고 있는 만큼 한·일도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끌어내 북한의 숨통을 바짝 조이는 데 앞장서야 함은 물론이다.

한·일 양자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못했으나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네 번 만났다는 것은 기대를 갖게 한다. 윤 대통령이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 데 대해 기시다 총리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답한 것을 보면 지난 5년간 꽉 막힌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물꼬는 텄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어그러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 의지도 밝혔고, 4일엔 강제동원 배상을 논의할 민관협의체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배상과 관련해선 일본 전범 기업의 자산을 강제로 매각하는 대신 일본 기업과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은 한국 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보상하자는 방안도 나오고 있는 등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 만큼 일본도 더욱 성의 있는 자세로 한국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양국 문제를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일만 없다면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