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부금 부자 KAIST
KAIST에는 2011년부터 시행 중인 ‘이원조교수제도’라는 게 있다. 젊고 우수한 교원에게 3년간 6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85세 할머니가 그 전해에 전 재산 100억원을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기부 당시 할머니는 “돈에 이름이 있느냐”며 외부에 알리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널리 알려야 더 많은 이가 기부할 수 있다는 설득에 겨우 알려준 게 오씨라는 성과 ‘이원(園)’이라는 호였다. 학교 측이 ‘오이원’이라는 가명으로 기부 사실을 발표한 이유다. 턱이 치아를 단단히 받친다는 ‘이원’의 뜻처럼 할머니의 기부금은 미래 과학인재를 위한 튼튼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이번에는 익명의 50대 부동산 사업가가 KAIST에 300억원 상당의 전 재산을 기부해 화제다. KAIST가 익명으로 받은 최고 기부액이자 역대 기부 중 일곱 번째로 큰 액수라고 한다. 학교 측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 및 의과학·바이오 분야 연구 지원금으로 이번 기부금을 사용할 계획이다.

KAIST에는 서울 성북동의 1000억원대 요정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도심 사찰 길상사를 만들게 한 고(故) 김영한 여사가 1999년 340억원을 기부한 것을 필두로 지금까지 고액 기부가 꼬리를 물고 있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2001년부터 515억원을 기탁한 것을 비롯해 최고액 기부자인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766억원), 고 류근철 박사(578억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500억원) 등 100억원 이상 기부만 20건 가까이 된다.

고액 기부자의 대부분은 KAIST 동문이 아니라 외부인이다. 첨단 과학기술 발전이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믿음 때문에 KAIST를 선택한다고 한다. 기부자가 지정한 용도로만 기부금을 사용하는 투명한 원칙, 기부자에 대한 정성 어린 예우 및 감사와 존경의 문화도 기증 릴레이를 부르는 요소로 꼽힌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기부자들의 사연이다. 이번 300억원 익명 기부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상의 돈이 쌓이는 것에 대한 부담이 항상 있었다”며 “이제부터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돈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정 전 회장의 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