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대부분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사용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의 피드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용자의 피드에서 불필요한 것을 축소하고 변경하는 것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사업자의 알고리즘에 의해서도 가능하지만 개인이 삭제와 추가를 통해 할 수 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피드를 보면 내가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좌인지 우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피드에 올라온 사람들이 올린 뉴스에 대해서는 우선 동조하게 된다. 신념이 편향이 되는 순간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작고한 리영희 선생이 저술한 책 제목이다. 새의 몸통에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 두 개가 달려 있지만, 한쪽 날개로는 날지 못한다는 은유로, 우리 사회 발전의 동력을 말하고 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날갯짓이야말로 똑바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5월 중순이면 차기 정부가 출범한다. 진보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의 문이 닫히고, 보수 정부라는 윤석열 정부가 문을 연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정부는 한쪽 진영의 정부가 아니며, 국민 모두의 정부라고 불리는 게 마땅하지만 우리는 그 앞에 ‘진보’ 혹은 ‘보수’라는 이념적 낙인을 찍게 된다. 대통령을 어느 당에서 당선시켰는가를 넘어 정책은 진보 혹은 보수의 색을 분명히 띠게 된다.

그렇다면 통합은 어떻게 가능할까. 좌우의 날개를 단 새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날개를 단 몸통이 있기 때문이며, 끊임없이 양날갯짓을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새는 날지 못한다. 통합은 그 두 가지를 충족해야 가능하다. 몸통 없는 좌우의 날개는 존재할 수 없다. 몸통은 국가이자 국민이다. 국가와 국민이 전부이며, 좌우의 날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빈 공간을 가르는 수단이다. 또한 날갯짓을 멈추면 날 수 없다. 한쪽 날개만 움직인다고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상충하는 진영 간 목소리를 조화롭게 담아내야 한다. 한쪽 날개만 부지런하게 추동하면 새는 날 수 없다. 날개만 바라본다면 몸통의 중요성은 소멸할 것이다. 정작 국민과 국가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좌우의 현란한 날갯짓에만 눈이 머물게 될 것이다. 정치의 본질은 사라진다.

저성장, 양극화, 국민 갈등, 저출산, 기후위기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놓인 거친 광야로, 두 날개로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반드시 좌우 날개 두 개를 이용해 날아야 한다. 국민이라는 건강한 몸통에 달린 두 날개를 이용해야 한다. 그래야 날 수 있다.

신념이 편향이 되는 시대, 자칫하면 그 편향들로만 가득 차는 피드로 살아가는 시대, 더더욱 리더는 좌우의 날개로만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로 다른 신념들을 존중하는 사회, 그 사회를 만들어가는 날갯짓이 간절히 필요하다. 이 시대 그 날갯짓을 목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