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 대만 TSMC에 연패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발주한 데이터센터용 핵심 칩(H100 GPU) 수주에 실패한 데 이어 소비자용 그래픽카드(GPU) 칩도 TSMC에 고배를 마셨다는 보도다. 특히 이전 모델의 GPU는 삼성이 위탁생산해 왔다는 점에서 TSMC에 일감을 빼앗긴 모양새가 됐다.

수주 실패 배경은 낮은 수율(전체 생산품 중 양품 비율)에 있다는 분석이 주요 외신에서 쏟아지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TSMC의 첨단공정 수율이 70% 안팎에 도달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최근 삼성의 5나노 이하 공정 수율은 30~40%로 알려졌다. 삼성은 4나노 파운드리로 만든 엑시노스 2200의 수율이 높지 않아 스마트폰 갤럭시S22에 퀄컴의 스냅드래곤8을 장착하기도 했다.

삼성 내부에선 이번 수주 실패를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동안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TSMC와의 격차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9년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놓고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3년이 지났지만, 격차는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52.1%, 삼성 18.3%다. 삼성 점유율은 3%포인트 남짓 늘었을 뿐이다.

2017년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 삼성이 단기간에 TSMC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정부 지원은커녕 총수 구속으로 인한 경영 공백을 메꾸기도 바쁜 처지였다. 정부와 기업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대만은 미·중 패권 경쟁 이후 한층 높아진 전략적 가치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미국 테크기업을 유치했고, TSMC는 미국에 1000억달러(약 113조원)를 들여 공장을 늘리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했고, 이를 기회로 인텔은 파운드리 분야에 눈독을 들이며 대규모 투자를 했다.

천하의 삼성이 파운드리에서 힘을 못쓰는 것을 보면서 상대방의 사정을 봐주거나 기다려주지도 않는 비즈니스의 세계가 얼마나 냉혹한지 뼈저리게 느낀다. 승자독식의 글로벌 산업 트렌드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 삼성은 자기반성과 혁신을 통해 ‘1등 삼성’, ‘초격차 DNA’를 되찾아야 한다. 정부도 국가 미래 먹거리 발굴 차원에서 대만 정부를 벤치마킹하고 파운드리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