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窓] 타산지석 삼아야 할 日 국가채무 증대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는 말이 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당장 하기 쉬운 일을 잡아 취함을 경계해 이르는 말이다. 정치가나 정책당국의 국채 발행을 통한 재원 조달이 이와 닮았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취해진 일본의 재정 운용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빚내기 국채 발행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국채 발행을 통한 정부 지출은 그 편익이 비용보다 클 때 정당화된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이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거나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외적 충격이 있을 때 국채 발행을 통한 안정화 정책은 큰 의미가 있다. 그렇더라도 위기 극복 이후엔 쌓인 국가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숙제가 남는다.

평상시 재정 운용에서도 편익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 개발도상국 상태에서 국채를 발행해 도로, 항만, 교량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얻게 되는 높은 편익의 경제정책은 지지를 받는다. 정부 지출 증가분보다 국민소득 증가분이 크다면 빚 문제 없는 성장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를 빌리면 정부지출 승수(소득 증가분/정부지출 증가분)가 1보다 커야 제대로 된 재정 운용이다. 일본에서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1960~1970년대는 승수 효과가 1보다 컸고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위기도 잘 극복했다.

문제는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의 대처였다. 일본 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공공지출을 늘렸지만 이용도가 낮은 도로나 전시장, 복지시설 건설 등 낭비적 지출이 많았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저출산 고령화 진전 국면과도 맞물려 사회보장·복지 재원을 국채 발행으로 마련해야 했다. 낭비적 공공지출 및 사회보장·복지지출 증대라는 이중 펀치는 일본을 성장상실기로 몰아넣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잃어버린 30년’을 초래했다.

국가채무는 민간의 채권이므로 국채를 늘려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종국에는 세금 부과로 국가채무를 갚아야 하므로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나아가 소득재분배적 사회보장·복지지출은 국채보다는 조세 수입이 그 원천이어야 마땅하다. 일본에서는 사회보장·복지지출 재원이 부족해 적자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해 왔다. 그런 적자국채를 민간이 보유한다는 것은 생산성이 높은 다른 부문으로의 투자가 줄어드는 ‘잠금 효과’를 낳는다.

민주주의 사회는 인기 영합을 위해 국채 발행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약점을 드러내나,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허약 체질을 면치 못한다. 일본은 기득권을 타파하는 구조 개혁보다는 당장 입맛에 맞는 곶감을 빼어 먹었다. 지지 효과가 금방 기대되는 노년층 우대정책 및 생산성이 낮은 한계기업 연명책이 상존했다. 재정규율은 허물어졌고 경기는 침체됐으며 장래 세대의 부담은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은 국가채무가 급격히 늘어난 일본의 1990년대 중반을 연상케 한다. 고령화율을 보면 일본이 1995년 14.6%, 문재인 정부 정책이 본격화한 2018년 14.3%로 비슷한 수준이다(총무성 및 한국 통계청 자료). 그 후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국가채무도 급속히 늘어났다. 윤석열 신정부가 재정건전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한국도 장기 불황의 서곡이 될 수 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성장상실기를 겪은 일본의 재정 운용 실패를 윤석열 정부는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