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대표되는 규제엔 누구나 공감할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상장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금융당국에 보고토록 한 ‘5% 룰’의 경우,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분율을 ‘5% 이상’으로 보는 컨센서스가 뿌리다. 그런데 서울 아파트 ‘35층 룰’은 왜 35층 이하로만 지어야 하는지 타당한 근거 없이 지난 9년간 유지됐다. 용적률을 감안하면 최대 35층 규제(3종 일반주거지역)가 적절하다는 비전문가 집단인 시민참여단의 2013년 결정만 있을 뿐이다.

이런 ‘35층 규제’가 드디어 폐지됐다. 지역 여건에 따라 유연하게 층수를 정할 수 있도록 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이 그제 발표된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일이다.

규제 이유 중엔 초고층 아파트 난립 및 과밀화, 남산·한강변 경관에 대한 우려가 있긴 했다. 그러나 획일적 규제가 오히려 한강변 성냥갑 아파트 문제를 키운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홍콩의 초고층 오피스와 아파트들이 빅토리아피크와 함께 멋진 경관을 만든 것과 대비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 격이다. 이제는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으로 도시 품격과 미관을 업그레이드하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과밀화 문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린벨트에 묶인 도시는 위아래 수직으로 공간을 넓혀 밀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파리 라데팡스, 몬트리올 언더그라운드시티가 그런 예다. 빼곡하게 건물만 짓는 과밀화가 아니라, 사적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 고밀화’가 필요하다. 이렇게 ‘수직 빅뱅’한 도시로 국경을 넘어 아이디어와 인재, 자본이 몰려들고, 혁신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규제 철폐가 한강변 3만 재건축 아파트값에 불을 지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주까지 6주 연속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가 하락세를 보이는 등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 지은 지 40년이 넘어 녹물 수돗물에 시달리는 노후 아파트 문제도 이제는 풀고 넘어가야 한다. 용적률은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개발이익이 크게 늘어날 염려는 기우(杞憂)다. 오히려 득표를 위해 서울 강남북을 뛰어다니며 용적률 500% 확대 같은 공약 경쟁만 펼친 여야 후보가 더 문제다.

도시에선 옛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역사보존물이라며 연탄보일러 때던 5층짜리 흉물스러운 아파트 한 동을 보존하겠다는 발상이 옛것을 지키는 길인가. 36층이 되는 순간부터 도시에 정감이 사라진다고 보는, 시대착오적 발상 자체를 바꿔야 한다. 뉴욕 맨해튼 서편 허드슨 강변엔 마치 범선 돛처럼 생긴 명물 아파트가 들어서 화제다. 그런 상상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