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언급한 대로 작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5186달러로 올라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전대미문의 위기에서 거둔 괄목할 성과”라며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홍 부총리의 이런 평가는 “이제 세계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됐다”던 문 대통령 반응과 판박이다. 두 사람의 말은 국민소득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는 2년 연속 감소세를 멈추고 3년 만에 반등한 것에 불과하다. 무모한 ‘소주성 실험’을 밀어붙인 2019년 GNI가 4%나 쪼그라들었던 만큼, 코로나 탓을 하기도 어렵다.

이 정부 4년간 GNI 증가율은 10.8%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명박 정부(28.1%)는 물론이고, 직전 박근혜 정부(16.0%)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작년 한 해 늘어난 소득 3305달러의 55%는 환율 하락과 물가 상승에 기인한다. 핵심인 ‘경제성장’ 기여분은 38%에 불과하다. 어느 모로 보나 자랑보다는 송구해 하는 게 바람직한 태도다.

정부의 자랑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과 성장잠재력이 뚝뚝 떨어지는 점을 호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는 게 현실이다. 경제 체질 개선과 미래산업 지원에 소홀한 채 5년 내내 재정 퍼붓기로 부작용을 땜질하고 통계지표를 분칠해온 결과다. 2018년 35.9%이던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는 위험 수위인 50% 돌파를 예약했다.

대통령은 3만5000달러 돌파에 대해 “이제 누구도 얕볼 수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됐다”고 했지만 현실은 반대다. 역주행 중인 경제 때문만이 아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됐지만 한국의 글로벌 위상은 오히려 곤두박질치고 있다. 북핵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독재자들의 눈치를 살피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어서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외면한 채 자국의 이익만 좇다 보니 동맹인 미국에서조차 한국에 대한 쓴소리가 넘치는 실정이다.

이런 퇴행적 행태로는 3만5000달러를 넘어 4만달러, 5만달러 달성이 요원하다. 에너지·반도체 전쟁에서 보듯, 경제도 국제정치의 영향권에 급속히 편입되는 뉴노멀이 도래했다.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국제사회의 왕따를 자초하고 작은 꼬투리를 부풀려 자랑으로 일관하는 꼼수가 언제까지 먹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