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전략산업 분야 핵심인력의 기술 유출과 해외 이직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직접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엔지니어를 관리하는 조치가 오는 7월 시행된다. 반도체·자동차·배터리·철강·바이오 등 12개 업종, 69개 분야 민간 엔지니어의 이직·출입국 정보 등을 국가가 모니터링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첨단산업 강화 특별법’에 이런 내용이 담긴 게 한경 보도(2월 14일자 A1, 3면)로 뒤늦게 드러났는데,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다. 민간인을 잠재적 범법자로 취급하는 전례 없는 ‘빅 브러더’ 방식이어서다. 7월 특별법 시행에 맞춰 기업들은 조만간 재직 중인 핵심 엔지니어 명단을 산업통상자원부로 넘겨야 한다. 국가 핵심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는 동의 없이도 출입국 정보 등을 열람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인정보보호법도 개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는 본인 동의가 있거나 전략기술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만 DB 관리대상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디테일 속 악마’를 막을 방법은 없다. 엔지니어가 동의하는 과정에서 국가나 회사의 강압이 작용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심각한 유출 우려’라는 모호한 문구 역시 남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에 통째로 넘어간 핵심 기술자 명단이 정부에 의해 유출될 위험도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산업부는 기업들의 요청을 받고 입법했다지만 믿기 어렵다. 주요 기업들은 핵심 엔지니어의 경우 명단부터 철저히 대외비로 분류한다. 또 엔지니어·팀 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게 ‘사내 방화벽’을 친 기업도 많다는 점에서 산업부 주장은 견강부회로 들린다. 일각에서 그런 요청이 있었더라도 기업별 사정을 무시한 획일적 강제는 입법권 남용일 뿐이다. 외국인이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된 점은 해외 우수인력 유치에도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큰 정부가 뭐가 어때서”라며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밀어붙인 후폭풍은, 정의감만 앞세운 28번의 부동산 정책이 잘 보여줬다. 정작 정부가 할 일은 기업 원천기술을 실질적으로 보호해 주는 정교한 제도적 장치의 설계다. 기술 유출을 직권으로 조사하는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사위원회(CFIUS), 촘촘한 대만의 대(對)중국 기술유출 방지조치들은 손쉬운 통제로 해결하려는 한국과 결을 달리한다. 엔지니어들이 능력만큼 대우받는 여건 조성, 기술유출자에 대한 처벌강화도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