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명의는 허구다
방송, 온라인 등 온갖 미디어에 명의(名醫)가 난무한다.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 1등을 지향하는 한국인의 속성으로 인한 의료적 아젠다가 ‘명의’다. 명의의 사전적 정의는 ‘병을 잘 고쳐 이름난 의사’다. 병을 잘 고쳐야 한다. 그런데 의사인 필자도 같은 병원의 실력자를 골라내는 게 거의 불가능한데, 미디어에서는 그걸 어떻게 알고 섭외할까.

명의 판별이 이론적으로는 어렵지 않다. 비슷한 중증도 환자들을 기준으로 호전율을 비교하면 된다. 요즘은 대부분 전자 차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분석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보험심사평가원은 해마다 ‘의료 적정성 평가’를 하는데 이는 의사 개별 평가가 아니라 병원의 수준 평가다. 3차 병원은 대부분 각 질환에 대해 모두 A등급을 받고 있고, 이는 애초에 의료 질의 상향 평준화를 위해 만든 것이니 명의 판별과는 상관이 없다.

그럼 미디어에서 명의를 소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정도의 방법이 활용된다. 첫째 제작자의 인맥과 정보, 둘째 동료 의사들의 평가, 셋째 병원의 평가, 넷째 의료소비자의 평가다. 여기에서 첫 번째 방법은 객관적 정보가 아니니 논외로 하자.

두 번째 방법을 보자. 만약 뇌졸중 명의를 찾는다면 동료 의사인 추천자는 그가 명의라고 어떻게 판단할까. 본인이나 지인이 걸린 뇌졸중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서? 본인은 그 질환에 걸렸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지인은 추천자가 진료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는 학회 활동 등 행정적 능력, 학술에 대한 주변 평가와 개인적 친분 등으로 결정된다. 추천자가 그 의사와 경쟁적 관계라면 오히려 추천 가능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세 번째 방법에서는 병원 수익 기여도가 중요하다. 국내 의료보험 제도는 행위별수가제가 근간인데, 이는 진료 행위마다 수가를 매겨 개별로 지급하는 제도다. 실력 있는 의사라면 필수적인 검사를 하고 필요한 치료만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의사라면 우왕좌왕하느라 더 많은 진료 행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제도하에서는 후자가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게 함정이다. 명의가 아닌 ‘우의(愚醫)’나 ‘악의(惡醫)’를 만날지도 모른다.

의료소비자에 의한 방법도 한계가 많다. 환우회, 온라인 카페 등이 이런 창구지만 여기에서는 전문적, 의학적 판단이 결여돼 있다. 여기에서 명의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은 친절도다. 의사는 절대적으로 친절해야 하지만, 친절도와 의사의 실력이 절대적으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평판에 의존한 명의는 허구다. 명성이나 친절보다는 비전문가인 환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성적 설명, 확실한 방향 제시가 더 중요한 덕목이다. 평판이 아니라 환자의 병에 ‘실제로’ 도움을 주는, 진정한 의사는 많다. 잘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