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린 인플레이션의 공포
얼마 전 대선 후보들의 토론 이후 ‘RE 100’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RE(Renewable Energy) 100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자는 캠페인으로, 현재 340여 개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RE 100보다 더 보편적인 국제규범은 탄소배출 순증가량을 ‘0’으로 하자는 ‘넷 제로(Net Zero) 2050’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거나 이산화탄소 포집과 저장, 삼림 투자 등을 통해 실질적인 증가가 없도록 하자는 탄소중립 정책이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모든 건물의 85%와 중화학공업의 90%, 전력생산의 70%가 넷 제로를 실현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의 기준은 이보다 훨씬 더 의욕적이다. 관건은 결국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등을 대폭 확대해 전력과 교통, 산업부문에서 과연 얼마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실제로 넷 제로 2050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지상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 제로’는 시행 초기 단계에서부터 벌써 국민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탄소 감축을 위한 막대한 투자와 기술 개발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친환경 정책으로 인한 ‘그린 인플레이션(green inflation)’의 공포가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이미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등에 소요되는 소재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에는 니켈 35㎏, 코발트 20㎏, 리튬 8㎏ 등 많은 광물이 소요되는데, 니켈과 코발트는 지난 1년간 각각 34%, 57%나 폭등했다. 소재 생산과 부존도 중국, 호주, 칠레 등 소수 국가에 편중돼 있어 공급 안정성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코발트는 전체의 약 70%가 콩고에 매장돼 있으며, 여타 광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탄소중립 정책으로 화석연료 생산은 줄었지만, 경기 회복에 따른 에너지 수요 증대로 오히려 원유와 석탄 등은 가격이 폭등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 유가 변동에 완충 역할을 해왔던 미국에서도 친환경 탈탄소 정책으로 원유 시추와 보조금 지급이 제한되면서 더는 원유 공급 증대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한국에서도 탈원전 정책이 전력 요금 상승을 불러오고 있지 않은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수록 오히려 그린 인플레이션이 더 심각해지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이미 미국과 유럽은 재생에너지(RE)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하는 CE(Clean Energy) 정책을 표방하고 나섰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고, 코로나가 진정된다고 해도 녹색 인플레이션의 공포는 누그러뜨릴 수 없다. 특히 한국과 동아시아처럼 중화학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더욱 심각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RE 100의 이상은 높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