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약물에 대한 역설적 태도
몇 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건강을 위한 교수님만의 방법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필자는 “특별한 방법은 없고, 그저 약을 잘 복용합니다”라고 답했다. 필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대답임에도, 진행자는 “약이요?” 하면서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의사들은 대개 독특한 건강 식단이나 운동법 등을 알려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약물 복용’을 권장하니 의아해했다. 하지만 필자가 이런 답을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필자의 외래는 뇌졸중 환자가 대다수다. 이들은 대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있어 이를 위한 약물 처방이 많다. 가끔 처방 약물을 줄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일부는 약물 복용 졸업 시기를 물을 때도 있다. 필수적인 약물은 어쩔 수 없지만, 뇌 영양제는 중단해도 된다고 답하면, 오히려 그건 꼭 먹어야 한다며 환자가 중단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환자는 애초에 항혈전제나 고혈압 약 같은 중요 약물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인가? 황당하지만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약은 안 먹는 게 좋고, 보약(補藥)이나 영양제 등은 여유만 된다면 최대한 먹어야 한다는 상식(?)이 만연해 있다. 정상인들조차 보약은 약이 아니니 먹어도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약은 도대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

약은 그 성분과 무관하게 우리 몸에서 처리하는 경로가 음식과 다르지 않다. 약물은 간에 의해 중화된 뒤 소변이나 대변을 통해 배출된다. 이는 음식물도 마찬가지다. 약물은 그 효과를 증폭하기 위해 유효 성분만 정제한 물질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몸은 약과 음식을 다르게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문 의약품은 초기 약효 검증 이후 전임상시험 및 정상인·환자를 대상으로 한 1상, 2상, 3상 임상시험을 반드시 거쳐야만 허가를 겨우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약물 하나마다 수천억원 혹은 수조원에 이르는 개발 비용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영양제 등의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미 허가한 성분에 대한 신고 및 제조 허가만 받으면 제품 출시가 가능한 구조다. 전문 의약품 수준의 혹독한 약효·독성 검증을 위한 임상시험은 필요없다. 이러니 수많은 쇼핑몰에서 영양제와 건기식이 판을 칠 수밖에. 2년 전엔 크릴오일, 요즘엔 오메가3로 난리다. 외래 진료 중에 혈압약은 기피하면서도 오메가3는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힌다.

필자는 의사임에도 고혈압, 고지혈증이 있어서 이들 약물을 복용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환자의 개인 건강에는 먼저 식단, 운동 등 건강생활과 함께 필요한 경우 지병에 맞춘 약물 복용이 기본이다. 그 이후에야 보약, 건기식 등 추가적인 건강 추구 행동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건강에서도 기본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