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미(對美) 통상외교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철강 분야에선 무(無)관세 협상 개시를 요구하는 산업계 목소리가 미국 측에 제대로 전달도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미국 측에 여러 차례 협상 개시를 요청했다는 설명과 달리, 현장에선 “미국 당국자들은 한국의 철강 무관세 요구 자체를 모르더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경쟁자인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이미 관세를 면제받거나 면제 협상에 들어갔는데, 한국은 정부와 업계가 진실게임이나 벌이는 한심한 모양새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는지 짐작가는 바가 없지 않다. 우선 미국의 의도적 ‘모르쇠’ 가능성이다. 정부는 여러 차례 협상을 요청했는데 미국 측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을 때는 협상할 생각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유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정부는 미·중 간 ‘줄타기 외교’가 철강 협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은 한국의 친중(親中) 행보에 경고를 보낸게 사실이다. 바이든 정부가 취임 1년이 넘도록 한국에 대사를 보내지 않는 것도, 한국 정부의 ‘통화 스와프’ 연장 요구를 거부한 것도 다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미국이 철강 협상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봐야 옳다.

정부가 철강문제 해결을 등한히 했을 수도 있다. 정부는 최근 들어 FTA 체결에 부산을 떨고 있다. 5년 가까이 팔짱끼고 있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뒤늦게 가입하겠다고 나섰고, 인도·걸프국가와의 FTA 체결·개정에도 적극적이다. 임기 내 뭐라도 남기겠다고 작정한 듯하다. 이러니 대미 철강 협상을 챙길 틈이 있었겠나 싶다.

외교의 본령은 국익 극대화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정부의 외교정책은 낙제점에 가깝다. 대미 외교 리스크를 감수하고 친중 외교를 펼쳤다면 요소수 사태와 배터리 원자재 수급 불안 정도는 막았어야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EU의 한국 조선산업 합병 불허 때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세계적 원자재 대란 속에 기껏 확보한 해외 광산을 헐값에 팔아치우는 근시안적 자원외교 행태에선 할 말을 잃게 된다. 통상교섭본부나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왜 둬야 하느냐는 성토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뒤늦게 미국과의 철강협상 등을 논의하기 위해 방미 중이라고 한다. 당장 철강 관세 문제를 풀 수 없더라도 미국의 진의 정도는 정확히 파악하고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