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 직원이 똘똘 뭉쳐 ‘친여(親與)’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의 선관위 잔류를 저지했다. 상임위원 3년 임기 만료 후 사퇴하는 불문율을 깨고 비상임위원으로 3년 더 자리를 보전하려던 청와대와 조 위원은 거센 반발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알박기’를 통한 청와대의 선관위 장악 시도가 공무원 집단행동에 좌절된 모양새다.

60년 선관위 역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에 2900여 명의 1~9급 직원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원 동참했다고 한다. 선거 중립 훼손에 대한 걱정과 임기 꼼수 연장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선관위 잔류를 시도하면서 당사자와 청와대는 노골적 행보를 보였다. 임기를 6개월 앞두고 뜬금없이 사의를 표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반려할 때부터 ‘잔류 명분 쌓기’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청와대는 임기만료일(24일)을 앞두고 이달 초 제출된 사표 역시 반려하고 3년간 더 선관위원직을 유지하는 방안을 밀어붙였다. ‘선관위원 임기는 원래 6년’이라는 어이없는 변명도 내놨다.

이번 거사(?)는 공무원이 나서서 민주주의 핵심 절차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조 위원이 잔류했다면 당장 40여 일 뒤 대선부터 심각한 불복 사태가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가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특보를 지낸 탓에 임명 때부터 말이 많았고, 재직 시 치른 선거들마다 여당에 유리한 결정을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선관위 내부통신망에 “주군인 문(文)이 준 자리라서 안 떠나느냐”는 식의 비아냥이 넘쳤을까 싶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이 판국에도 여론 눈치를 살피며 함구 중인 청와대다. “내 거취는 임명권자 뜻에 달렸다”고 조 상임위원이 말한 데서 드러나듯, 코미디 같은 사태를 벌이고도 청와대는 사과 한마디 없다.

직(職)을 걸고 선거 중립의 디딤돌을 놓은 선관위를 본받아야 할 공직자가 부지기수다. 법률에 의해 재정건전성을 지킬 의무가 부여된 기획재정부 직원이 대표적이다. 청와대와 여당에 끌려다니며 자리 보전을 앞세운 탓에 지난 21일 문재인 정부의 10번째 추경안이 의결됐다. 1951년 이후 71년 만의 1월 추경으로, 나랏빚은 1075조원으로 어느새 1100조원이 코앞이다. 추경 14조원의 81%인 11조3000억원을 적자국채로 조달하기 때문이다. 기재부 직원이 한마음으로 임한다면 정치권 폭주를 저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선관위가 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