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소프트파워, 슈퍼참치, 공정
도대체 권력(힘)이란 무엇인가? 미국 학계에서는 1950년대부터 10년 넘게 벌어진 ‘지역사회 권력 논쟁(community power debate)’을 거치면서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모아졌다. 하나는 내버려뒀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내버려뒀으면 했을 일을 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영국 출신의 정치사회학자 스티븐 루크스는 1974년 출판한 책에서 힘(권력)에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는 통찰을 더했다. 즉, 상대가 스스로 알아서 내가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하거나 하지 않게 하는 능력이다.

그 후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1990년 출판한 책 《21세기도 미국이 주도한다(Bound to Lead)》에서 이 ‘힘의 제3의 얼굴’에 ‘소프트파워(연성권력)’라는 이름을 붙였다. 군사력 경제력 같은 ‘하드파워(경성권력)’와 달리 소프트파워는 가치와 선호를 형성하는 힘이다.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니 굳이 경성권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1990년대 드라마 수출로 시작된 한류의 도도한 물결을 타고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역사상 최고점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K드라마니 K팝이니 K푸드니 하는 말이 영어 단어에 편입될 정도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는 사건이 최근에도 있었다. BTS의 멤버인 진이 낚시를 갔다가 장난처럼 만든 노래 ‘슈퍼참치’의 동영상을 그의 생일인 지난달 4일 유튜브에 공개하자 엄청난 반응이 일어났다. 전 세계에서 조회수가 급증하면서 닷새 만에 유튜브 ‘전 세계 인기 음악 동영상’에서 65개국에 트렌딩되며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첫 솔로 OST ‘Yours’와 더불어 ‘빌보드 핫 트렌딩 송 차트’에 각각 8위와 16위로 진입했다.

이뿐이 아니다. 정작 본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끄럽다고 말렸지만 유튜브, 틱톡 등 매체에선 슈퍼참치를 따라하는 ‘슈퍼참치 챌린지’가 이어졌다. 지난달 10일 틱톡에는 외국의 한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다함께 슈퍼참치 안무를 따라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을 보면 10여 명의 아이들이 진이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보며 춤을 따라 춘다. 이들은 춤을 추면서 가사에 맞춰 다같이 “참치!”를 외치기도 한다.

다만 슈퍼참치가 공개된 뒤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는 가사에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를 썼다는 이유로 불만이 제기됐다.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가사 중 “동해바다 서해바다 내 물고기는 어딨을까”라는 부분이다. ‘일본해’인데 왜 ‘동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슈퍼참치를 전 세계에서 듣고 있으니 일본인이 제대로 항의해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진과 BTS 소속사를 비난했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국제사회의 반응이다. 슈퍼참치의 인기가 계속되자 해외 언론에서는 동해의 표기와 관련한 한·일 간 분쟁을 소개하기도 했고, 그동안 일본해를 고집하던 일부 지도 출판사 또한 동해를 병기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일부 민간단체에서 힘겹게 벌여온 동해 병기 노력에 노래 하나로 큰 힘을 보탠 결과가 됐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파워의 위력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많은 이가 노력한 결과지만 현재 BTS가 최첨병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BTS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도 천문학적이지만 단순히 돈만이 아니다. 이들은 한국을 매력적인 나라, 경험하고 싶은 나라로 만든다는 점에서 한국의 더 큰 국익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BTS 멤버들은 올해부터 차례로 군에 입대한다. 이들이 병역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밝히는 것은 기특한 일이지만, 과연 이들이 군에 입대하는 것과 현재의 자리에서 계속 활동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우리나라에 더 도움이 될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슈퍼참치가 발표되기 직전 국회 국방위원회는 BTS의 입대와 관련해 병역법 개정을 논의했지만 ‘공정’을 앞세운 여당의 반대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일찍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차이를 인정하는 ‘비례적 평등’이 진정한 평등이라고 했다. 새해에는 정부 여당이 공정을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살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