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리라화 가치가 연초 대비 반토막 나며 터키 경제가 위기로 치닫는 양상이다. 연초 7.43리라이던 리라·달러 환율은 엊그제 18.36리라로 마감, 리라화 가치는 올 들어 60%나 폭락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리라화 가치를 보호하겠다’며 강력한 개입에 나서자 리라화 가치가 상당 부분 반등했지만, 극심한 ‘널뛰기’ 탓에 시장 불안감은 더 커졌다.

현재 터키 금융시장은 외환위기 때의 한국을 연상시킨다. 터키 중앙은행은 이달에만 다섯 차례 시장에 개입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대신 외환보유액만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자 연초 300bp이던 CDS 프리미엄(부도에 대비해 지급하는 보험 수수료)은 600bp를 훌쩍 넘어섰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평가하는 국가 디폴트 위험이 올 들어 두 배 이상 높아졌다는 의미다.

일련의 긴박한 사태는 ‘거꾸로 경제정책’이 초래한 결과다.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세계 각국이 금리 인상으로 풀린 돈을 회수 중이지만 에르도안은 정반대로 금리 인하를 밀어붙이고 있다. 9~12월 4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이 조치는 6개월 연속 20% 안팎의 물가상승률로 이어졌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금리정책에 반대한 중앙은행장을 2년 새 3명이나 갈아치웠다.

터키 사례는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장기 집권을 위한 경기 부양에 급급한 에르도안 정권은 어이없는 반대 방향 해법을 선택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경쟁력이 살아나고, 금리 인하로 기업 차입 비용이 낮아지면 제조업이 활성화될 것이란 얼치기 해법이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물가 급등으로 민심이 동요하자 에르도안은 내년 최저임금을 50%나 올리는 포퓰리즘 처방도 강구했다. 물가와 환율을 감안하면 근로자들의 실질소득은 마이너스인데도 “노동자들이 물가 상승에 짓눌리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라며 생색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터키가 처한 곤경은 정치 지도자의 엉뚱한 믿음이 부르는 파괴적인 결과를 절감하게 해 준다. 멀리 볼 것도 없다. 가계에 현금을 퍼주면 소비가 늘어난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도 에르도안의 ‘금리 인하를 통한 인플레 잡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35세 좌파 대통령 당선 후 칠레 페소화가 추락 중인 것도 재정 지출 확대라는 포퓰리즘 우려 때문이다. 국고는 비고 물가도 심상찮은데 ‘50조, 100조’를 외치며 돈풀기 경쟁에 여념이 없는 대선 주자들은 터키의 추락부터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