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일본의 공생혼(共生婚)
“결혼은 새장과 같다”고 얘기한 건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1533~1592)다. 새장 밖 새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려 애쓰지만, 일단 들어간 후에는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게 결혼과 닮았다는 의미다.

결혼생활이 유사 이래로 그랬는지는 미지수다. 수렵시대엔 결혼 제도 없이 군혼(群婚) 형태였다. 성관계 대상에 대한 규율이나 제한이 없었다. 농경시대로 접어들며 혈족 간 성관계가 금지됐고, 이후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 등의 과도기를 거쳐 현재의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았다. 그 중간중간 수많은 결혼 관련 주장들이 나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BC 428~347)은 이상국가 건설을 위해 여자와 자녀를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것 네것’을 따지지 않아야 구성원 간 결속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산 것은 아이러니다.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앞으로 결혼은 고체가 아닌 액체 속성으로 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공생혼(共生婚)’이 그런 형태다. 공생혼은 부부가 법적으로 결혼하고 같이 살지만, 재산관리부터 연애까지 독립적 개인 생활을 보장받는 관계다. 성생활은 선택 사항이다. 일반 부부보다는 느슨하고, 결혼하지 않고 주거공간만 공유하는 ‘하우스 메이트’보다는 단단한 결속이다.

전통적 형태의 결혼 생활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입원이나 주택구입 때처럼 법적 보호자가 필요한 경우를 대비하려는 젊은층 사이에서 확산세라고 한다. 부부로 혼인신고를 한다는 것만 빼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시민결합’ 등 유럽 비혼 커플제도와 유사하다.

한국에서도 가족의 해체가 진행 중이다. 청소년 10명 중 6명이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하고 있고, 젊은층을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늘면서 그 비중이 30%를 넘어섰다. 50세까지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는 ‘생애미혼율’은 17%(남성기준)에 달한다. 국민 중 70%는 혼인이나 혈연여부에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생활을 같이 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 지원해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정부는 계속 결혼제도 중심의 지원만 고집한다. 저출산 대책에 천문학적 예산을 쓰고도 합계출산율(0.84명)이 세계 최하위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