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전에서 다양한 공약이 쏟아지지만 정작 수많은 유권자가 듣고 싶은 진정한 개혁 아젠다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게 노사관계와 노동 문제다. 핵심 현안인 좋은 일자리 창출도 이 문제를 도외시하면 헛구호일 뿐이다. 고용노동부라는 부처 이름처럼 ‘노동’과 함께 갈 때 ‘고용’ 문제도 풀리는 것이다.

물론 노동 아젠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개선·개혁 공약이 없다는 사실이다.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공약은커녕 그 반대로 내달리는 게 더 문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논란 많은 노동이사제를 거대 여당을 동원해 밀어붙이겠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산업계가 얼마나 놀랐으면 이 말이 나오자마자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공동성명을 내고 입법화 중단을 요청했겠나. 이 후보는 타임오프제까지 연내 입법화하겠다고 했다. 마치 ‘노정(勞政)연대’를 선언하는 것 같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주4일 근무제를 내놨다. 이 후보는 여기에도 동조했다. 국민의힘도 노동개혁에 관한 한 소극적이다. 임이자 의원은 이런 와중에 노조행사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권익 보호가 우리 고용·노동시장의 아킬레스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68년 전에 제정된 뒤떨어진 근로기준법은 놔둔 채, 이렇게만 주장하면 어떻게 되는지 정녕 모르는 것인가. 일자리 창출, 노동약자 보호, 노동규제 개혁 등의 이유로 경총이 근로기준법 재정비를 제안한 게 불과 보름 전이다.

노조조직률이 10% 남짓한 현실에서 대선후보들이 노동운동 그룹과 기득권 강성 노조를 의식한 선심 경쟁을 벌이는 것은 곤란하다. 툭하면 벌어지는 파업에 맞서 사측의 자구적 수단도 필요하다는 현실에는 왜 눈을 감나. 선진국엔 보편적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을 산업계가 요구한 게 얼마나 오래됐나. 고용·근로·임금 모든 면에서 경직적인 제도를 언제까지 못 본 체 외면할 텐가. 취업을 바라면서도 통계상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자에도 못 끼는 400만 명은 흩어진 모래알일 뿐이라는 건가.

이런 와중에 대규모 불법집회 주도로 구속됐던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이 집행유예로 곧바로 풀려났다. 민노총은 이번 주말에도 도심 집회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산하 화물연대는 물류난 우려 속에 파업에 돌입했지만 쓴소리 한번 하는 후보도 없다. 퇴행적 정치가 ‘노조공화국’을 공고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