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뇌가 있는 풍경] 공감의 뇌 기전과 사이코패스
공원에서 엄마 손을 잡고 노는 아이가 있다. 그런데 화려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나비를 따라 뛰어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아픈 아이는 빨간 피를 흘리며 큰 소리로 운다. 엄마도 아이를 따라 울상이 되고 마음이 아파진다. 본인 상처는 없지만 아이의 고통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고통뿐만 아니라 기쁨도 공감이 가능하다. 자녀의 환한 웃음을 보면 부모는 함께 기뻐한다. 이러한 정서적 공감 외에 인지적 공감도 있다.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고, 타인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인지적 공감 능력 덕분이다.

공감 능력의 결여는 다양한 정신·신경질환과 관련된다. 자폐증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불안증, 감정표현불능증,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강박장애, 사이코패스 등에서 공감 능력 결여가 주요 증상의 하나로 보고된다. 그런데 암이나 당뇨와 달리 이 질환들은 명확한 과학적 진단기술이 아직 없다. 자기공명 이미지를 사용해 공감 반응 시에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비교하는 것이 최선이다. 공감 능력을 조절하는 뇌 기전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이유다.

특히 사이코패스는 소설, 영화 등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주인공 리플리는 치밀한 계획으로 부자의 아들인 친구를 살해한다. 그렇게 친구의 재산을 차지한 뒤 거짓말을 계속하다가 또 살인을 하고, 결국 파멸한다. 끔찍한 행위와 대조되는 평온하고 순진한 태도가 관객에게 공포감을 유도할 정도다. 공감 능력 결여의 전형적인 예로 거론되는 영화 속 인물이다.
[신희섭의 뇌가 있는 풍경] 공감의 뇌 기전과 사이코패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극단적 예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심하게 결여돼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다. 남에게 고통을 유발하면서도 미안함과 죄의식은 고사하고 오히려 재미를 느낀다. 사회 통념과 도덕 규범을 무시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범법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수감 중인 강력범죄자들을 정신과 진단으로 사이코패스와 아닌 사람으로 구분해 뇌의 구조와 기능을 비교하는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사이코패스인 사람들은 뇌 두 부위의 신경 연결이 약하고 신호 교류도 저하돼 있었다. 하나는 공포심과 불안감 등을 조절하는 편도이고, 다른 하나는 공감 능력과 죄의식 등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이다. 이를 통해 사이코패스가 사회적 관계에서 보이는 냉담성이나 충동적인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다만 뇌 상태와 행동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뇌에서 해당 부위를 실험적으로 조작하고 그로 인한 행동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의 뇌 기전 연구에 동물 모델이 필요한 이유다.

사회관계 유지하려면 공감능력 필수

원래 공감 능력은 인간, 침팬지 등에서나 볼 수 있는 뇌의 고등 기능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의 연구를 통해 공감 능력의 기본 형태가 설치류에도 존재함이 확인됐다. 예컨대 통증으로 고통받는 쥐와 함께 지낸 쥐는 통증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정 장소에서 다른 쥐가 공포에 휩싸이는 것을 접한 쥐는 덩달아 행동이 얼어붙는 공포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나중에 같은 장소에 가면 공포 기억이 되살아난다. 쥐는 다른 쥐가 덫에 걸려 스트레스를 받으면 구해주기도 한다. 이는 모두 다른 쥐의 정서 상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서 비롯된다.

쥐를 통한 공포 공감의 뇌 연구는 인과 관계 규명 수준으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전대상피질, 편도핵, 대뇌섬피질, 중심선 시상 등의 부위가 공포 공감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공포 공감에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도 발견됐다. 공포 공감의 진행 순간에 전대상피질(전전두엽의 일부)과 편도핵이 함께 활성화되면서 정보를 교환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쥐 뇌의 이 부위들은 인간의 공감 반응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에 상응한다. 이는 인간과 설치류의 공감 반응이 유사한 뇌 기전에 의해 일어남을 시사한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일상적 대화뿐 아니라 종교적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집단을 구성해 유지하려면 공감 능력이 필수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3대 회장 사티아 나델라는 취임하면서부터 공감이라는 가치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려는 메시지를 회사에 불어넣었다. 모바일 시대 흐름에 뒤처져 부진을 겪던 마이크로소프트가 부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희섭 IBS 명예연구위원, 에스엘바이젠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