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생산직 신규채용과 관련한 노조의 몰염치는 청년들이 왜 분노할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준다. 기아 소하지회 노조는 ‘신입사원 채용 시 직원자녀 우선채용’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을 규정한 단체협약 조항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일자리 대물림 관행은 ‘현대판 음서제’에 다름 아니다. 공정한 취업기회 박탈, 노동시장 내 격차 확대, 고용구조의 악화를 부르는 명백한 반칙이자 불법이다. 고용정책기본법, 직업안정법 등은 채용 시 성별·연령·신체조건은 물론이고 ‘신분’을 이유로도 차별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 ‘노사가 특별채용협약을 맺었다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작년 9월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산재 유족에 국한된 판례일 뿐이다. 노사합의로 단체협약에 규정해도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기 때문에 민법(103조)상으로도 효력이 상실된다.

민노총은 “오래된 관례”라며 두둔한다. 일말의 죄의식조차 없다. “내 자식 우선 뽑아달라”는 요구도 당황스럽지만 소하공장 생산직 신규채용이 2017년 이후 5년 만이라는 점도 놀랍다. 친환경차 전환에 맞춰 인력감축이 필요한데도 하도급 근로자 2387명을 정규직 전환하다 보니 신규채용은 실종이다. 그래도 노조는 정년연장과 자녀우선채용을 밀어붙이며 기득권 지키기에 열심이다. 청년고용은 바늘구멍일 수밖에 없다.

대졸청년 고용률은 75.2%로 OECD 평균(82.9%)을 한참 밑돈다. 37개국 중 31위다. 대졸 청년 비경제활동인구가 20.3%로 OECD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실질 순위는 훨씬 더 추락할 것이다. 청년들의 이런 비명이 안 들리는지 국내 30대 기업 중 24%인 8곳에서 고용세습조항을 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달 국감에서는 최근 2년 새 국립대병원 10곳에서 재직자의 친인척이 560명이나 합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3년 전 서울교통공사에서 직원들의 친인척이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실이 드러난 뒤 고용세습 조항을 삭제할 것처럼 부산을 떨었지만 달라진 건 없다. 얼마나 많은 채용비리가 소리소문 없이 저질러지고, 청년들이 좌절을 겪었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기아 노조 사례는 더 이상 자정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청년 일자리 만든다면서 관제 알바 늘리기에 시간과 재원을 낭비하지 말고, 고용세습을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하는 노동조합법 개정부터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