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 칼럼] 교육, '공정'만큼 '미래'도 중요하다
매년 11월 ‘그날’만 되면 온 나라가 긴장한다. 출근시간이 조정되고, 증시 개·폐장도 한 시간씩 늦춰진다. 항공기 이착륙도 일시적으로 멈춘다. 바로 대입 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지는 날이다.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으로 명칭과 성격은 달라졌지만 그날의 풍경은 비슷하다. 올해는 코로나 방역 때문에 수능(18일) 1주일 전부터 모든 고등학교가 원격수업으로 전환된다. 이미 고3 학생들이 집에서 수업받는 학교 주변 아파트엔 소음 나는 인테리어 공사를 자제해달라는 공지문까지 붙어있다. 이렇듯 수능은 온 국민이 함께 겪는 ‘큰일’이다.

한국 부모의 교육열이 남다르다. 올해 일반계 고등학교 기준 대학진학률은 아직도 80%에 육박할 정도다. 입시는 사교육 시장과 연결돼 집값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역대 정부가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대책을 내놨지만, 또 다른 부작용들이 나타나면서 땜질식 처방이 이어졌다.

수시와 정시를 병행하는 지금의 입시 틀이 갖춰진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첫 문민정부답게 획일화에서 벗어난 다양성과 자율성을 강조했다. 학력고사가 단편 지식 암기평가에 그친다는 비판이 높자 1994년 통합교과형 문제로 사고력을 평가하는 수능을 도입했다. 이듬해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했고, 1997년 입시부터는 각 대학교가 학생들의 성적뿐 아니라 학교활동 등도 반영해 뽑을 수 있도록 학교생활기록부와 수시전형을 도입했다.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줄을 세운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학교 수업만으로 수능을 대비할 수 없게 되자 학생들은 학원으로 향했다.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교육 실험’이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해찬표 교육개혁’이 대표적이다. 잘하는 것 하나만 있어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2002년 ‘불수능’과 겹치면서 ‘단군 이래 최저학력’ 논란을 낳았다. 노무현 정부 땐 공교육 정상화를 내걸고 내신·수능 등급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수능 변별력 약화로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도입하면서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수능-논술)’이란 말이 회자됐다.

이명박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확대했지만, ‘부모 찬스’ 입학이 문제가 됐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학생부에 교내 활동만 기재하는 식으로 보완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도입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입시정책이 갈팡질팡했다. 성적 줄세우는 수능에 비판적이었으나 ‘조국 사태’를 계기로 공정성 이슈가 제기되자, 수능 위주의 정시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공정성으로 치면 수능점수만으로 대입을 결정하는 게 제일 깔끔할 수 있다. 실제 야당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는 수시 폐지, 수능 2회를 내걸었다. 하지만 단순업무는 AI(인공지능)가 처리하고 인간은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란 미래사회가 다가오는데, 학생들을 다시 한 줄로 세우는 게 맞을지는 의문이다.

내년 3월 대선에서 맞붙을 후보가 정해졌다. 교육공약 관련해선 아직 뚜렷하게 부각된 것이 없다. 이렇다 보니 누가 돼도 교육은 뒷전 아니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 인터뷰 등을 보면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모두 교육의 ‘공정성’을 강조한다. 결은 좀 다르다. 이 후보는 청년대책 차원에서 대학생 등록금 부담을 낮추겠다고 한다. 윤 후보는 특혜입학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시제도를 단순화하고 정시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입시비리를 적발할 암행어사제 도입도 언급했다.

앞으로 좀 더 구체화된 교육공약들이 나올 것이다. 공정성도 중요하지만 국가 미래를 좌우할 인재 양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앞에 두고 정책을 고민했으면 한다. 진념, 이헌재 등 역대 경제부총리들은 틈만 나면 교육혁신을 이야기했다. 경제력과 국력 모두 교육에서 나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